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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고고학/고고학적 증거와 논쟁

여리고와 아이(Ai) 성 발굴의 연대기 불일치: 믿음과 팩트 사이 150년

핵심 요약: 여리고 성벽은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가 성경의 기록(기원전 1400년)과 고고학적 데이터(기원전 1550년) 사이에서 150년이나 어긋납니다. 이 '사라진 시간'을 해결하지 못하면,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은 역사적 사실의 지위를 잃게 됩니다. 캐슬린 케년의 '폐허설'과 브라이언트 우드의 '재반박'을 통해 냉정하게 팩트를 검증합니다.

여리고와 아이(Ai) 성 발굴의 연대기 불일치: 믿음과 팩트 사이 150년

1. 숫자의 모순: 성경 vs 고고학의 타임라인

성경의 연대를 문자 그대로 계산하면 여리고 정복은 기원전 1406년경입니다. 솔로몬 성전 건축(기원전 966년)에서 480년을 거슬러 올라간 결과입니다(왕상 6:1).

하지만 땅속의 시계는 다르게 돌아갑니다. 고고학 발굴은 이 시기에 여리고가 이미 파괴되어 버려진 상태였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마치 약속 장소에 150년 늦게 도착한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오차가 아닙니다. 고대 근동 역사에서 150년은 왕조가 몇 번이나 바뀌는 긴 시간입니다. 이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성경의 기록은 역사성을 잃고 맙니다.


무너지는 여리고성과 연구하는 고고학자

2. 캐슬린 케년의 충격: "여리고는 비어 있었다"

1952년부터 1958년까지 여리고(텔 에스-술탄)를 발굴한 영국의 캐슬린 케년(Kathleen Kenyon)은 고고학계의 거목입니다. 그녀는 현대적인 '층위학적 발굴법'을 도입해 정밀 조사를 마친 뒤 충격적인 결론을 내렸습니다.

📌 케년의 결론 요약
  • 여리고 성벽(City IV)의 파괴 연대는 기원전 1550년이다.
  • 이는 여호수아 시대보다 150년 앞선 시기다.
  • 파괴의 주체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힉소스 족을 몰아낸 이집트 군대다.
  • 여호수아가 도착했을 때(기원전 1400년경), 여리고에는 성벽도, 사람도 없었다.

케년의 결정적 근거는 '키프로스 이색 토기(Cypriot Bichrome Ware)'의 부재였습니다. 당시 국제 무역이 활발했던 후기 청동기 시대(기원전 1550~1200년)의 지층이라면 반드시 나와야 할 수입 토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 브라이언트 우드의 반격: 데이터의 재해석

케년의 발표 이후 수십 년간 침묵하던 보수 학계에서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1990년,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 박사는 케년의 발굴 보고서를 면밀히 재검토한 후, 그녀가 데이터를 오독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드의 3가지 핵심 반박:

① 토기 분석의 오류
케년은 좁은 구역만 팠습니다. 우드는 수입 토기는 없었지만, 당시 가나안 현지에서 생산된 '모방 토기'들이 기원전 1400년경의 특징을 명확히 보여준다고 지적했습니다.

② 불탄 곡식 항아리
발굴 현장에서는 곡식이 가득 찬 채로 불탄 항아리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을 시사합니다.
첫째, 추수 직후(유월절 시기)에 공격받았다.
둘째, 포위 기간이 매우 짧아(성경의 7일) 식량을 소진하지 못했다. 이는 약탈을 금지한 여호수아의 명령(수 6:18)과도 일치합니다.

③ 무너진 성벽의 형태
발굴된 성벽 잔해는 성벽 바깥쪽으로 쏟아져 내려 자연스러운 경사로(Ramp)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앞으로 나아가"(수 6:20)라는 묘사와 물리적으로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하지만 학계는 여전히 신중합니다. 탄소 연대 측정 결과가 샘플마다 편차가 있고, 기원전 1550년 파괴설을 지지하는 증거들도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4. 아이(Ai) 성의 난제: 1,000년의 침묵

여리고가 '논쟁 중'이라면, 아이 성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성경의 아이 성으로 지목된 엣-텔(Et-Tell) 유적은 여리고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 엣-텔(Et-Tell) 발굴 팩트 체크 ]

시기 상태
기원전 2400년 이전 거대 도시 존재 (초기 청동기)
기원전 2400~1200년 완벽한 폐허 (사람 거주 흔적 없음)
기원전 1200년 이후 작은 마을 형성 (철기 시대)

보시다시피 여호수아 시대(기원전 1400년)에 엣-텔은 문자 그대로 '빈 땅'이었습니다. 아이(Ai)라는 이름 자체가 히브리어로 '폐허'라는 뜻입니다. 성경 기자가 과거의 거대한 폐허를 보고 전설을 만들었다는 '원인론적(Etiological) 설명'이 주류 학설인 이유입니다.

대안은 없는가?
보수 학계에서는 엣-텔이 아니라 인근의 '키르벳 엘-마카티르(Khirbet el-Maqatir)'를 진짜 아이 성으로 지목합니다. 이곳에서는 후기 청동기 시대의 요새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주류 학계의 정설로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무너진 성벽과 150년의 공백을 연구하는 학자

5. 결론: 역사는 억지로 맞춰지지 않는다

우리는 두 가지 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는 고고학적 증거를 무시하고 무조건 믿는 맹신이고, 다른 하나는 발굴되지 않은 것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단정하는 오만입니다.

현재 스코어는 여리고(무승부), 아이 성(성경의 패배 또는 장소 오인) 정도입니다. 하지만 고고학은 계속해서 새로운 흙을 파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텍스트와 흙더미 사이의 긴장을 견디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실이 역사적 사실(Fact)인지, 신학적 메시지(Truth)인지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 참고문헌 (References)

  • Kenyon, K. M. (1957). Digging Up Jericho. London: Ernest Benn.
  • Wood, B. G. (1990). "Did the Israelites Conquer Jericho? A New Look at the Archaeological Evidence". Biblical Archaeology Review.
  • Finkelstein, I., & Silberman, N. A. (2001). The Bible Unearthed. New York: Free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