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수르의 산헤립이 예루살렘 정복을 위해 포위하고 있었는데, 그렇다면 당시 예루살렘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요?
밖에서는 18만 5천 명의 앗수르 대군이 칼을 갈고 있을 때, 안에서는 왕과 백성이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고 있었습니다. 기도만 한 것이 아닙니다. 살기 위해 암반을 뚫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유물은 화려한 금박도, 거대한 조각상도 아닙니다. 무릎까지 차오르는 차가운 물과 좁은 바위 틈. 바로 '히스기야 터널(Hezekiah's Tunnel)'입니다. 현대 토목공학으로도 설명하기 힘든 이 미스터리한 지하 수로가 어떻게 유다 왕국을 구원했는지 파헤쳐 봅니다.
목차
1. 치명적인 약점: 물은 성벽 밖에 있다
고대 예루살렘의 유일한 수원지인 '기혼 샘(Gihon Spring)'은 치명적이게도 성벽 바깥, 기드론 골짜기 아래에 있었습니다. 이는 공성전을 벌이는 적군에게는 생명수요, 농성하는 아군에게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히스기야 왕의 전략은 단순하지만 대담했습니다. "샘을 덮어버려라. 그리고 물줄기를 땅속으로 돌려 성 안으로 끌어들여라."(역대하 32:3-4)
적군은 물이 없어 목말라 죽고, 아군은 성 안에서 안전하게 물을 마시는 시나리오. 이것이 바로 기원전 701년, 앗수르의 침공 직전에 단행된 극비 토목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습니다.
2. 불가사의한 S자 곡선: 왜 직선으로 뚫지 않았나?
이 터널의 총길이는 약 533m(1,750피트). 그런데 시작점과 끝점을 직선으로 이으면 320m에 불과합니다. 굳이 200m나 더 길게, 그것도 뱀처럼 휘어지는 S자 형태로 팠습니다.
더 놀라운 건 '양쪽 굴착(Simultaneous Excavation)' 방식을 썼다는 점입니다. 북쪽과 남쪽에서 동시에 파들어가 중간에서 만나는 방식인데, GPS도 나침반도 없던 시절에 두 팀은 정확히 지하 30m 지점에서 만났습니다.
학계의 가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음향 신호설: 지상에서 망치로 바위를 두드려 소리로 방향을 잡았다.
- 자연 균열설(가장 유력): 로니 라이히(Ronny Reich) 박사는 석회암 지대의 자연적인 틈(karstic crack)을 따라 파들어갔기 때문에 S자가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즉, 물이 흐르는 틈을 따라 확장 공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3. 실로암 비문: 노동자들의 육성이 들린다
1880년, 이 터널 안에서 놀고 있던 팔레스타인 소년들이 벽에 새겨진 고대 히브리어 비문을 발견합니다. 왕의 업적을 자랑하는 뻔한 내용이 아닙니다. 이 비문은 흙먼지 뒤집어쓴 노동자들의 현장 보고서입니다.
"...터널이 뚫렸다. 3규빗(약 1.5m)을 남겨두고 반대편에서 동료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바위 틈(Zeda)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끼가 서로 부딪혔다(Axe against axe). 물이 샘에서 연못까지 1,200규빗을 흘러갔다..."
- 실로암 비문(Siloam Inscription) 중
이 비문은 안타깝게도 오스만 제국 시절 뜯겨나가 현재 이스라엘이 아닌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튀르키예는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4. 팩트체크: 정말 히스기야가 만들었는가?
일부 미니멀리스트 학자들은 이 터널이 히스기야보다 훨씬 후대(하스모니안 왕조)에 만들어졌다고 의심했습니다. 성경의 기록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죠.
그러나 2003년, 과학이 논란을 종결시켰습니다. 히브리대 연구팀이 터널 회반죽에 섞인 식물 조각을 탄소 연대 측정한 결과, 기원전 700년경(±수십 년)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정확히 히스기야 시대와 일치합니다. 성경의 기록(왕하 20:20)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쾌거였습니다.
히스기야는 보이지 않는 지하 암반에 생명의 수로를 남겼습니다. 어둠 속에서 묵묵히 팠던 이 물길은 지금도 예루살렘에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위기 앞에서 기적을 바랍니다. 하지만 히스기야 터널은 말해줍니다. 진짜 기적은 가만히 앉아 기도만 할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손에 물집이 터지도록 곡괭이질을 하며 현실의 벽을 뚫을 때 찾아온다는 것을.
"도끼와 도끼가 맞부딪혔다"는 실로암 비문의 마지막 문장은, 절망의 양쪽 끝에서 포기하지 않고 파들어간 자들만이 만날 수 있는 희망의 접속(Contact)음일지도 모릅니다.
참고문헌
Reich, R., & Shukron, E. (2002). "The Excavations at the Gihon Spring and Warren's Shaft System." Ancient Jerusalem Revealed.
Frumkin, A., Shimron, A., & Rosenbaum, J. (2003). "Radiometric dating of the Siloam Tunnel, Jerusalem." Nature, 425(6954).
KAI 189 (Siloam Inscription 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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