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고고학

에발산 저주 서판: 성경 고고학의 '성배'인가, 희대의 '착시'인가?

scripture 2025. 12. 13. 09:21

결론부터 말하자면,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입니다.
2019년 발견된 이 2cm짜리 납 조각이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라는 주장은 매력적이지만, 주류 학계는 이를 '납 낚시추에 난 스크래치'로 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팩트와 논쟁을 해부해 봅니다.

1. 발견의 재구성: 쓰레기 더미에서 찾은 보물?

이 유물의 출처부터 명확히 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서판이 '발굴 현장'에서 붓으로 털어내며 발견된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1.1 아담 제르탈의 유산과 재체질(Wet Sifting)
1980년대, 이스라엘의 고고학자 아담 제르탈(Adam Zertal) 교수는 에발산에서 제단(여호수아의 제단으로 추정)을 발굴했습니다. 당시 기술로는 확인하지 못하고 버려둔 흙더미(Dump piles)가 있었습니다. 2019년, 스콧 스트리플링(Scott Stripling) 박사가 이끄는 ABR(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팀이 이 흙더미를 다시 뒤졌습니다.

그들은 '습식 체질(Wet Sifting)'이라는 기술을 사용했습니다. 마른 흙에서는 보이지 않던 작은 유물들이 물에 씻기면서 드러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가로세로 약 2cm 크기의 접힌 납판(lead tablet)이 발견됩니다.

참고: 고대 근동에서 납 서판은 주로 '저주(Defixio)'를 적어 신전이나 무덤에 던져 넣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2. 주장의 핵심: "저주받아라"와 YHW

이 납판은 접혀 있었기에 펼치면 부서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연구팀은 체코 프라하의 연구소로 이를 보내 X-ray 단층 촬영(Tomographic scan)을 실시했습니다.

2.1 해독 주장 (2022년 발표)
하이파 대학의 게르숀 갈릴(Gershon Galil) 교수와 연구팀은 판독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 문자: 초기 알파벳(Proto-alphabetic) 또는 원시 히브리어.
  • 내용: "저주받아라, 저주받아라, YHW(야훼)에 의해 저주받아라."
  • 구조: 교차 대구법(Chiasm) 형태의 정교한 문학적 구조.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기원전 13세기(후기 청동기 시대)에 이미 이스라엘인들이 'YHW'라는 신의 이름을 쓰고 읽을 줄 알았다는 결정적 증거가 됩니다. 이는 성경 기록의 연대를 획기적으로 뒷받침하는 사건입니다.

저주 서판에서 보여지는 원시 히브리어 이미지

3. 학계의 냉정한 반론: 글자인가, 흠집인가

그러나 블로그 독자 여러분, 여기서 냉정해져야 합니다. 2023년 5월, 해당 연구가 학술지 Heritage Science에 게재된 후 학계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왜일까요?

📊 데이터로 보는 에발산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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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HW (신 야훼)
 
arur arur (저주)
현재 [실제 모습] 상태입니다.
육안으로는 접힌 납덩어리로 보이며 표면에는 수많은 긁힌 자국만 보입니다.

3.1 파라이돌리아(Pareidolia) 논란
조지 워싱턴 대학의 크리스토퍼 롤스턴(Christopher Rollston) 교수를 비롯한 금석학 전문가들은 공개된 사진에서 "어떤 글자도 식별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 납은 무른 금속입니다. 땅속에서 구르며 수많은 흠집과 찍힘이 발생합니다.
  • 연구팀이 제시한 글자들은 이러한 흠집을 자의적으로 연결해 글자로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입니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파라이돌리아(구름에서 얼굴을 보는 착시 현상)라고 합니다.

3.2 낚시 그물 추 가설
이스라엘의 고고학자 아렌 메이어(Aren Maeir)는 이것이 저주 서판이 아니라, 단순히 그물에 매달던 납 무게추(Fishing sinker)일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헬레니즘 및 로마 시대 지층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4. 고고학적 연대 측정의 맹점

이 유물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정확한 지층(Context)의 부재'입니다.

🔍 팩트 체크:
발굴 현장(In situ)에서 지층과 함께 발견된 것이 아니라, 30년 전 파내어 쌓아둔 흙더미에서 나왔습니다. 이 흙더미에는 청동기 시대 유물뿐만 아니라 로마 시대, 비잔틴 시대의 유물도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납의 동위원소 분석을 통해 기원전 1200년경의 납이라고 주장하지만, 납 자체의 생산 시기와 그 납을 재활용해 서판을 만든 시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5. 마무리 인사이트: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

에발산 서판은 성경 역사성을 입증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복음'과도 같고, 엄밀한 과학적 검증을 요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의심스러운 주장'입니다.

우리는 이 두 시각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현재로서는 "가능성은 있으나 검증되지 않았다(Unproven)"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직한 태도입니다. 섣불리 "성경이 증명되었다"고 환호하다가 나중에 오류로 밝혀지면, 오히려 신뢰도만 추락합니다.

진실은 차분히 기다리는 자의 몫입니다. 추가적인 고해상도 스캔과 제3의 연구팀에 의한 교차 검증 결과를 지켜봅시다.


참고문헌:
1. Stripling, S., et al. (2023). "You are Cursed by the God YHW: an early Hebrew inscription from Mt. Ebal." Heritage Science.
2. Rollston, C. (2022). "The Mount Ebal Lead ‘Curse’ Tablet." Rollston Epigraphy.
3. Maeir, A. (2023). Criticisms on the interpretation of the lead tabl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