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도장이 찍힌 성문? 하솔, 므깃도, 게셀의 미스터리
솔로몬의 도장이 찍힌 성문? 하솔, 므깃도, 게셀의 미스터리
핵심 요약: 성경(왕상 9:15)은 솔로몬이 세 도시를 건축했다고 기록했다. 고고학자 야딘은 이 세 곳에서 '동일한 설계도'의 성문을 찾아냈다. 이것이 솔로몬의 '지문'일까, 아니면 후대 왕조의 '덧칠'일까? 돌덩이들이 말하는 진실 게임을 시작한다.
목차
1. 솔로몬의 건축 리스트와 현장 검증
정치인이 공약을 지켰는지 확인하려면 예산 집행 내역을 까보면 된다. 고대 왕의 업적을 확인하려면? 땅을 파봐야 한다.
성경 열왕기상 9장 15절은 솔로몬 왕의 '국책 사업' 리스트를 명확히 적시하고 있다.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이러하니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왕상 9:15)
예루살렘은 그렇다 치고, 북쪽의 하솔(Hazor), 요새 도시 므깃도(Megiddo), 그리고 남쪽의 게셀(Gezer). 이 세 도시는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과 무역로를 장악하는 핵심 거점이었다.
마치 서울, 대전, 부산에 고속철도 역사를 짓는 것과 같다. 만약 솔로몬이 실존했고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를 이뤘다면, 이 세 도시에 '국가 표준 설계'가 적용된 흔적이 있어야 한다.
2. 6방 성문(Six-Chambered Gate)이란 무엇인가?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이 '흔적'은 바로 성문이다. 그런데 그냥 문이 아니다. 아주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 구조: 성문 통로 양옆으로 각각 3개씩, 총 6개의 방(Chamber)이 있다.
- 용도: 평시에는 경비병의 대기소나 상인들의 거래 장소, 전시에는 적의 진입을 지연시키는 방어 거점이다.
- 크기: 므깃도와 하솔, 게셀의 성문 크기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쉽게 말해, 오늘날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 구조가 서울이나 부산이나 똑같은 것과 같다. 이는 중앙 정부의 표준 설계도(Royal Blueprint)가 존재했다는 강력한 증거다.

3. 이가엘 야딘의 '스모킹 건'
1950년대,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고고학자 이가엘 야딘(Yigael Yadin)은 므깃도 발굴 보고서를 읽다가 무릎을 탁 쳤다. 하솔에서 발견한 성문과 므깃도의 성문이 쌍둥이처럼 똑같았기 때문이다.
야딘은 아직 발굴되지 않았던 '게셀'의 발굴 보고서를 뒤졌다. 그리고 맥칼리스터(Macalister)가 '마카비 시대의 요새'라고 잘못 분류했던 구조물이 사실은 '솔로몬의 6방 성문'임을 직감했다.
야딘은 현장으로 달려가 다시 팠고, 예언(?)대로 그곳엔 6방 성문이 있었다.
야딘의 논리 (High Chronology):
- 성경은 솔로몬이 세 도시를 건축했다고 했다.
- 세 도시에서 동일한 규격의 성문이 나왔다.
- 토기 양식과 지층(Stratigraphy) 분석 결과 기원전 10세기(솔로몬 시대)다.
- 결론: 이 성문들은 솔로몬의 중앙 집권 권력을 입증한다.
4. 반격: 핑켈슈타인과 저연대설(Low Chronology)
하지만 학계에 "무조건적인 아멘"은 없다. 1990년대 이후 이스라엘 핑켈슈타인(Israel Finkelstein)을 필두로 한 수정주의 학자들은 이 판을 뒤집으려 시도했다.
이들은 탄소 연대 측정과 토기 분석을 재검토하며 '저연대설(Low Chronology)'을 주장한다. 핵심은 지층의 연대를 약 80~100년 뒤로 미루는 것이다.
핑켈슈타인의 반론:
- 므깃도와 하솔의 성문: 솔로몬(BC 10세기)이 아니라, 북이스라엘의 전성기를 이끈 오므리 왕조(아합 왕, BC 9세기)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 근거: 사마리아(오므리 왕조의 수도) 건축 양식과 므깃도 성문의 유사성, 그리고 탄소 연대 데이터의 재해석.
- 의미: 솔로몬 시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소박한 '부족 연맹체'였고, 거대 건축은 후대 왕조의 업적을 솔로몬에게 투영한 것일 수 있다.
현재 므깃도의 6방 성문은 논란의 중심이다. 일부 학자들은 므깃도의 성문이 솔로몬 시대가 맞다고 고수하지만, 핑켈슈타인 학파는 이를 격렬히 부정한다.
다만, 게셀(Gezer)의 성문만큼은 기원전 10세기(솔로몬 시대)에 가깝다는 것이 최근 탄소 연대 측정으로 어느 정도 힘을 얻고 있다.
(관련 글: 탄소 연대 측정의 함정: 할슈타트 평탄 구간이란?)
5. 결론: 돌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해석은 변한다
세 도시의 성문이 놀랍도록 닮았다는 사실(Fact)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 강력한 왕권으로 표준화된 건축을 지시했다.
그 '누구'가 솔로몬인지, 아니면 그 뒤를 이은 오므리 왕조인지는 여전히 흙먼지 날리는 논쟁 중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의 기록(왕상 9:15)이 단순히 허구가 아니라 실제 존재했던 고고학적 현상(동일한 성문 구조)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어가 누구냐의 싸움일 뿐, 그 거대한 성문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 논쟁을 지켜보는 가장 현명한 태도는? "믿습니다"가 아니라 "더 파봅시다"가 되어야 한다.
참고문헌 (References)
- Yadin, Y. (1972). Hazor: The Head of All Those Kingdoms. Oxford University Press.
- Finkelstein, I. (1996). "The Archaeology of the United Monarchy: An Alternative View". Levant.
- Mazar, A. (1990).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Doubleday.
- Ussishkin, D. (1980). "Was the 'Solomonic' City Gate at Megiddo Built by King Solomon?". BA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