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고고학

시삭은 정말 예루살렘을 털었나? 부바스 티스 포털의 침묵

scripture 2025. 12. 17. 23:38

성경은 예루살렘의 보물을 뺏겼다고 울상을 짓는데, 이집트 승전비에는 예루살렘 이름이 쏙 빠져있다?
동지였던 여로보암의 뒤통수까지 친 시삭(셰숑크 1세)의 진짜 원정 목표를 파헤친다.



1. 시삭, 그는 누구인가? (솔로몬의 적, 여로보암의 후원자)

성경 독자들은 '시삭(Shishak)'을 단순히 르호보암 때 쳐들어온 악당 정도로 기억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는 이집트 제3중간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제22왕조(리비아 왕조)를 개창한 '셰숑크 1세(Sheshonq I)'다. 파라오의 권위가 바닥을 칠 때 등장해 강력한 중앙집권화를 꿈꿨던 야심가다.

재미있는 건 그의 '인맥 관리'다. 솔로몬에게 쫓겨난 여로보암을 이집트로 망명 받아주고 먹여 살렸다(왕상 11:40). 일종의 정치적 망명객을 보호하며 레반트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카드'로 쥐고 있었던 셈이다.

정치판엔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고 했던가.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 왕이 되자마자 시삭은 군대를 몰고 올라왔다. 과연 그는 유다만 쳤을까? 아니면 자신이 키워준 북이스라엘도 쳤을까?

2. 팩트 체크: 성경의 기록 vs 카르낙의 기록

여기서 두 기록이 충돌한다. 하나는 피해자의 진술서고, 하나는 가해자의 승전일기다.

성경의 주장 (왕상 14:25-26)

  • 시기: 르호보암 왕 제5년 (기원전 925년경).
  • 타겟: 예루살렘.
  • 피해: 여호와의 성전 보물, 왕궁 보물, 솔로몬의 금방패를 "다 빼앗았다"고 기록.

이집트의 주장 (카르낙 신전 부바스 티스 포털)

  • 이집트 룩소르(테베)의 카르낙 아문 신전 벽면에는 시삭의 원정 경로와 정복한 도시 목록이 빼곡히 적혀 있다.
  • 아문 신(Amun)이 포로들을 줄줄이 엮어 시삭에게 바치는 그림이다.
  • 약 150개 이상의 지명이 등장한다. 가자(Gaza), 르홉, 다나크, 므깃도, 벧산 등.
  • 문제점: 정작 성경이 '다 털렸다'고 주장하는 '예루살렘'이란 이름이 이 리스트에 없다.

3. 미스터리: 리스트엔 왜 예루살렘이 없을까?

이집트 파라오들은 작은 승리도 크게 부풀려 자랑하는 게 특기다. 그런데 예루살렘 같은 '대어'를 낚고도 기록하지 않았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몇 가지 가설이 충돌한다.

가설 A: 공납(뇌물)으로 때웠다 (주류 학설)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전투 없는 항복'이다. 르호보암이 시삭의 군대가 예루살렘 코앞(기브온 등)에 들이닥치자, 싸우는 대신 성문 열고 보물을 바쳤다는 것이다.

고대 근동의 관습상 '정복 리스트'는 무력으로 파괴하거나 함락시킨 도시를 적는 경우가 많다. 자발적으로(혹은 겁먹어서) 조공을 바친 도시는 파괴 명단에서 굳이 거론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즉, 예루살렘은 '정복' 당한 게 아니라 '털린' 것이다.

가설 B: 비문 손상설

리스트의 일부가 훼손되어 읽을 수 없는 부분에 예루살렘이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케네스 키친(Kenneth Kitchen) 같은 이집트학 권위자들은 리스트의 지리적 배열 순서(Boustrophedon)를 볼 때, 예루살렘이 들어갈 자리가 애매하다고 지적한다.

4. 고고학적 증거: 친구의 나라도 짓밟는 냉혹한 국제정치

시삭의 원정 경로를 지도에 찍어보면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난다.

그의 군대는 유다(남쪽)만 공격한 게 아니다. 자신이 망명을 받아주었던 여로보암의 땅, 북이스라엘을 처참하게 유린했다.

증거 1: 므깃도(Megiddo)의 셰숑크 석비

북이스라엘의 핵심 요충지 므깃도에서 셰숑크 1세의 카르투슈(이름표)가 새겨진 석비 조각이 발견되었다. 이는 시삭의 군대가 북이스라엘 깊숙이 진군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Mazar, 1990).

증거 2: 네게브 사막의 요새들 파괴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지역의 텔 마소스(Tel Masos) 등 수많은 요새가 이 시기에 파괴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는 시삭이 단순히 유다를 징벌하러 온 게 아니라, '무역로(The King's Highway)' 장악이 주 목적이었음을 시사한다.

분석: 시삭에게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분열용 카드'였을 뿐이다. 분열이 성공하자, 이제 막강해지려는 북이스라엘의 기를 꺾고 구리 광산과 무역로를 독점하기 위해 가차 없이 칼을 들이댔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먹잇감"이 되는 것은 고대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예루살렘은 돈을 공물로 납부하고, 북이스라엘은 불탔다

5. 결론 및 인사이트

시삭의 침공은 단순한 종교적 징벌(성경의 관점)을 넘어, 이집트의 제국주의적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 사실 1: 시삭은 예루살렘을 파괴하지 않았다. 대신 보물을 뜯어갔을(공납)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부바스 티스 포털에는 예루살렘 이름이 없다.
  • 사실 2: 시삭은 북이스라엘과 네게브 사막을 집중 타격했다. 여로보암과의 동맹은 허울뿐이었으며, 실리는 무역로 장악에 있었다.
  • 핵심: 성경은 '왜(Why)' 침공당했는지(죄 때문)를 말하고, 고고학은 '어디로(Where)' 침공했는지(무역로)를 말한다. 이 둘을 합쳐야 반쪽짜리 역사가 완성된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성경을 읽을 때 "왜 예루살렘만 맞았을까?"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시삭은 팔레스타인 전역을 휩쓸며 "형님(이집트)이 돌아왔다"고 선포한 것이다. 보물은 유다가 잃었지만, 국토가 유린당한 건 오히려 북이스라엘이었다.

[다음 글 예고: 아합 왕은 정말 나쁜 놈이었나? 아시리아 비문이 말하는 아합의 군사력]

참고문헌 (References)

  • Kitchen, K. A. (1986). The Third Intermediate Period in Egypt (1100–650 BC). Aris & Phillips.
  • Mazar, A. (1990).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10,000-586 B.C.E. Doubleday.
  • Finkelstein, I. (2002). "The Campaign of Shoshenq I to Palestine: A Guide to the 10th Century BCE Polity." ZDP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