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큰 돌 구조물(LSS)': 다윗의 왕궁인가, 학계의 희망사항인가?
돌무더기 하나에 '다윗'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순간, 고고학은 전쟁이 된다. 에일랏 마자르 박사가 발굴한 거대 석조 건물, 과연 성경 속 그 왕궁일까? 아니면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착시일까?
목차
1. '큰 돌 구조물(LSS)'의 실체와 발견
고고학에서 가장 위험한 행동은 '성경책을 한 손에 들고 땅을 파는 것'이다. 자신이 찾고 싶은 것을 땅속에 투영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2005년, 히브리 대학의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 박사가 예루살렘 다윗 성(City of David) 북쪽 경사면에서 거대한 석조 건물의 기초를 발견했을 때, 전 세계가 들썩였다.
이 유적은 일명 '큰 돌 구조물(Large Stone Structure, 이하 LSS)'로 불린다. 위치는 다윗 성의 정점, 즉 아크로폴리스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 구조물은 바로 아래 위치한 '계단식 돌 구조물(Stepped Stone Structure)'과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 돌들이 단순한 축대가 아니라, 거대한 공공 건물의 기초였다는 점이다. 벽의 두께만 2~3미터에 달한다. 일반 민가가 아니다. 요새이거나 왕궁이다. 여기서 핵심 질문이 던져진다. "누가, 언제 지었는가?"
2. 최대주의자의 주장: "이것이 다윗의 왕궁이다"
마자르 박사의 주장은 간명하다. 마치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듯, 성경 텍스트와 발굴 결과를 1:1로 매칭했다. 그녀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 성경적 근거: 사무엘하 5장 11절에 두로 왕 히람이 다윗을 위해 목수와 석수를 보내 집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5장 17절에 블레셋이 침공하자 다윗이 '요새로 내려갔다(went down to the stronghold)'는 표현이 나온다. 즉, 왕궁은 요새보다 높은 곳(북쪽 정상)에 있어야 한다.
- 도자기 연대: LSS 내부와 하부에서 발견된 도자기 조각들이 철기 시대 I기(기원전 11~10세기)와 철기 시대 IIa기(기원전 10세기)에 해당한다.
- 연결성: LSS는 계단식 돌 구조물(기원전 10세기경 보강됨)을 지지 기반으로 삼아 그 위에 건설되었다.
마자르는 선언했다. "이것은 다윗 왕의 궁전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다윗 왕조는 성경의 묘사처럼 기원전 10세기에 이미 거대 건축물을 축조할 수 있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다는 뜻이 된다.
3. 최소주의자의 반론: "연대 측정의 오류와 비약"
하지만 학계는 냉정하다. 텔 아비브 대학의 이스라엘 핑켈슈타인(Israel Finkelstein)을 위시한 '성경적 최소주의자'들은 마자르의 주장을 "희망 사항이 섞인 해석"이라며 일축했다. 그들의 반박은 마치 부실 공사를 지적하는 감리사의 보고서처럼 날카롭다.
- 도자기의 해석: 마자르가 제시한 도자기들은 '필(fill)' 즉, 건물을 지을 때 바닥을 메우기 위해 가져온 흙 속에 있던 것이다. 이것은 건물의 건축 시기(terminus ad quem)를 확정하지 못한다. 그저 그 흙이 어디서 왔는지를 말해줄 뿐이다.
- 건축 시기의 불일치: LSS의 일부 벽은 헬레니즘 시대(Hasmonean)나 비잔틴 시대에 수리된 흔적이 역력하다. 전체를 10세기로 보기는 어렵다.
- 여부스족의 요새설: 이 거대 구조물은 다윗 이전에 예루살렘을 점령했던 여부스족(Jebusites)의 요새일 가능성이 높다. 다윗은 이 요새를 점령해 재사용했을 뿐, 새로 지은 것이 아닐 수 있다.
핑켈슈타인은 묻는다. "다윗 시대의 예루살렘은 고작해야 산골 마을 수준 아니었나?" 그들에게 LSS는 다윗의 영광을 증명하기엔 너무 모호한 돌무더기다.

4. 층위학적 분석과 유물 증거
감정 싸움을 멈추고 땅속의 증거를 보자. LSS 구역에서 발견된 결정적인 유물들이 있다. 바로 '불라(Bullae, 진흙 인장)'다.
이곳에서 예레미야서에 등장하는 두 고위 관료의 이름이 적힌 인장이 발견되었다.
1. 유칼의 아들 여후갈 (Jehucal ben Shelemiah) - 렘 37:3
2. 바스훌의 아들 Gedaliah (Gedaliah ben Pashhur) - 렘 38:1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적어도 기원전 6세기(예레미야 시대, 남유다 멸망 직전)까지 이 건물이 왕실 행정 센터로 기능했다는 강력한 증거다.
하지만 이것이 건물의 '건축 시기'가 기원전 10세기(다윗 시대)임을 증명하진 않는다. 조선시대 경복궁에서 스마트폰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경복궁을 21세기에 지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반대로, 경복궁에서 고려 청자가 나왔다고 해서 고려시대 건물이라 단정할 수도 없다.
학계의 중론(Mainstream View): 현재 다수의 학자들은 LSS가 여부스 족의 요새(Zion Fortress)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다윗은 이를 정복하여 보수하고 확장했을 것이다. 즉, "다윗이 지은 궁전"이라기보다는 "다윗이 사용한(점거한) 요새"라고 부르는 것이 팩트에 가깝다.
5. 결론: 역사는 돌 위에 쓰이지 않았다
예루살렘의 LSS 논쟁은 고고학이 얼마나 해석의 학문인지를 보여준다. 에일랏 마자르는 성경의 문자적 정확성을 믿고 싶어 했고, 최소주의자들은 물증 없는 역사를 거부했다.
우리가 확인한 팩트는 다음과 같다:
1)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해 예루살렘 북쪽에 거대한 공공 건물이 존재했다.
2) 이 건물은 남유다 멸망 때까지 행정 중심지로 쓰였다.
3) 하지만 이것이 다윗이 두로 기술자를 불러 '새로 지은' 그 궁전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이 돌들은 다윗의 영광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저 그곳에 누군가 권력을 쥐고 살았음을 침묵으로 증언할 뿐이다. 신앙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이지만, 고고학은 보고도 의심하는 것이다. 이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돌덩이와 싸우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References)
- Mazar, E. (2009). The Palace of King David: Excavations at the Summit of the City of David. Preliminary Report of Seasons 2005–2007. Jerusalem: Shoham Academic Research and Publication.
- Finkelstein, I., & Silberman, N. A. (2006). David and Solomon: In Search of the Bible's Sacred Kings and the Roots of the Western Tradition. Free Press.
- Faust, A. (2010). The Large Stone Structure in the City of David: A Reexamination. Zeitschrift des Deutschen Palästina-Vere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