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드(Arad) 성소: 성경의 거짓말과 고고학의 진실
아라드(Arad) 성소
성경의 거짓말과 고고학의 진실
아라드 요새 지성소에서 발견된 두 개의 돌기둥(massebot). 하나는 야훼를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성경은 이를 "불법 제단"이라 낙인찍었지만, 고고학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중앙 통제 이전의 유다에서는 종교 다원주의가 자연스러웠다. 요시야의 개혁은 종교 혁신이 아닌, 권력 독점을 위한 정치적 강탈이었다.
아라드: 솔로몬 성전의 축소판
1962년, 고고학자 요하난 아하로니가 유다 남방 요새 아라드를 발굴했을 때, 학계는 기겁했다. 왜? 예루살렘 밖에서 정식 성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아라드 요새 안에는 솔로몬 성전과 똑같은 구조를 갖춘 성소가 있었다:
- 제장(courtyard)과 번제단(제사용)
- 성소(holy place)
- 지성소(holy of holies)
- 향단 2개
- 그리고 두 개의 돌기둥(massebot)
구조만 보면, 이것은 예루살렘의 중앙 성전이 유일한 합법적 제사처라는 성경 주장을 뒤엎는 증거다. 기원전 10-6세기 동안 이 성소는 실제로 작동했으며, 발굴된 오스트라콘(행정 문서)에는 성경에도 나오는 제사장 므레못과 바스훌의 이름이 적혀 있다. 즉, 예루살렘 중앙 제사장 계보와 연결되어 있었다.
수수께끼의 두 개 돌기둥
여기서 핵심이 나타난다. 지성소 안에서 발견된 두 개의 돌기둥은 뭐란 말인가?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두 가지 해석이 팽팽하다.
첫 번째 해석(주류): 야훼와 아셰라를 위한 것
아셰라는 가나안 풍요의 여신으로, 야훼의 신비한 배우자로 추정된다. 쿤틸렛 아주드 비문에 "야훼와 그의 아셀라(Yahweh and his Asherah)"라는 표현이 있다. 유다 지역에서 발견된 여인상 토우(pillar figurines)들도 아셀라 숭배를 강력히 암시한다. 즉, 아라드 성소에서는 야훼와 여신 아셀라를 함께 숭배했다는 뜻이다.
두 번째 해석(보수파): 둘 다 야훼를 위한 것
돌기둥(massebot)은 "신상(image)을 금지"하면서도 신의 임재를 무상적(aniconic)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해석은 "그럼 왜 두 개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학계의 대다수는 첫 번째 해석을 지지한다. 아라드는 고대 유다에서 종교 다원주의가 자연스러웠다는 증거인 것이다.

지방 성소의 정당성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다: 아라드 같은 지방 성소는 불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철기시대 II(Iron Age II) 고대 근동 전체를 보면, 지방 성소와 다중 제사처는 정상적인 종교 체계였다. 이집트, 아시리아, 페니키아에서는 모두 중앙 신전 외에 무수한 지역 성소가 존재했다.
아라드 성소가 유독 특별한 이유는 세 가지다.
왕실 후원
단순한 주민 자치 제사처가 아니라, 유다 왕국이 공식 허락하고 운영한 성소였다는 점이다.
행정 문서 남김
제사장들의 이름과 제사 기록이 행정 문서(오스트라콘)에 남아 있다는 점이다.
정식 건축
임시방편이 아닌 정식 축조 성전이라는 점이다.
즉, 아라드는 유다 왕국의 중앙 정부가 인정한 종교 시설이었다.
예루살렘 중앙 성소 독점의 진짜 목적
그런데 왜 성경은 이런 합법적 지방 성소들을 "불법 제단"이라 부르고, 예루살렘 유일성을 주장했을까?
답은 정치경제학에 있다.
권력 집중
중앙 성소 독점화는 왕권 강화의 수단이었다. 모든 종교적 의사 결정이 예루살렘으로 집중된다. 전국의 종교 자원(헌금, 제물, 제사장)이 왕궁 통제 하에 들어온다. 지방 지도자들의 종교적 자율성 박탈은 곧 정치적 예속을 의미한다.
재정 확보
유다는 신흥 왕국이었다. 아시리아와 신바빌론의 압박 속에서, 지방 성소에 흩어진 헌금을 중앙으로 집중시켜 국방비 확보가 가능했다. 이는 제사 수익의 왕실 독점을 의미한다.
이념적 통제
"야훼는 오직 예루살렘에만 거하신다"는 주장은 다원적 신앙을 일원화하는 강력한 논리였다. 종교 개혁이라는 포장 아래,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였다.
성경 본문을 보면 이 의도가 명확하다.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종교 개혁을 설명하는 열왕기의 저자는 지방 성소 파괴를 "종교 정화"라 부르지만, 고고학 증거는 이것이 경제 및 권력 확보의 도구였음을 보여준다.
요시야 개혁: 종교적 쿠데타
아라드 성소가 최종적으로 폐기된 시점은 기원전 7세기 중반, 요시야 왕 치세 무렵이다.
발굴 증거는 명확하다. 지성소의 돌기둥들이 의도적으로 벽에 박혀 있었다(decommissioning). 제사 용품들이 사라졌다(모든 cultic paraphernalia 제거). 강렬한 화재의 흔적이 남았다(약 기원전 7C).
성경 기록(열왕기하 23:4-8)은 이를 요시야가 발견한 "율법책(데우테로노미)"에 따른 종교 개혁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헤스기야의 개혁(기원전 701년경)은 경제 때문이었고, 요시야의 개혁(기원전 622년경)은 종교 이념 때문이었다는 구분이 정확하지 않다. 실제로는, 아시리아의 멸망(기원전 612년) 후 신흥 강대국 신바빌론의 위협 속에서, 유다가 민족 결집을 위해 종교를 정치적 무기로 사용했다는 뜻이다.
요시야는 아라드를 파괴하면서 "야훼의 온전한 숭배를 복원"한다고 주장했지만, 실은 지방 귀족들의 종교적 자율성을 박탈하고 왕실 권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나만의 관점: 신앙이 아닌 권력
고고학과 성경사 연구가 최근 10년간 보여주는 핵심은 이것이다: "성경의 일신교는 현실이 아니라 이상(ideal)이었다."
철기시대 유다에서, 엘리트(왕실, 대제사장)는 야훼 유일 숭배 이데올로기를 추진했다. 반면 대중(지방, 여성, 농민)은 다양한 신(야훼, 아셀라, 별의 여신들)을 동시에 숭배했다.
아라드는 그 중간 지점이었다. 왕실이 후원하되, 지역의 종교 다원주의를 용인하는 타협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기원전 7세기 후반, 국제 정세의 격변 속에서 유다 왕실은 이 타협을 깨뜨렸다. 종교적 순수성이라는 명분 아래, 실은 중앙 권력을 극대화하려는 결정이었다.
역사의 역설
여기서 흥미로운 역사적 역설이 생긴다. 요시야의 강압적 종교 통일은 66년 뒤 바빌론 멸망(기원전 586년)으로 무너진다. 그 이후, 오히려 종교 다원주의가 부활한다(제2성전기, 페르시아 통치 아래). 현대 유대교의 복잡한 신학적 다양성은, 어찌 보면 아라드의 종교 체계를 잇는 것일 수도 있다.
⚔️ 결론: 아라드는 단순한 고고학 유적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어떻게 종교를 이용하는지, 그리고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현실을 왜곡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타임캡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