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고고학

무덤에서 깨어난 가장 오래된 성경 구절, 케테프 힌놈 은 두루마리의 진짜 의미

scripture 2025. 12. 22. 23:50
케테프 힌놈 은 두루마리: 포로기 이전 성경 텍스트의 실체

기원전 7세기 예루살렘의 무덤에서 나온 두 개의 은 부적. 그 안에 민수기 6장의 제사장 축복이 새겨져 있다. 이 작은 은판은 포로기 이후에야 성경이 만들어졌다는 학설을 뒤흔드는 고고학적 증거이자, 말씀이 실제로 ‘부적’처럼 사용되던 고대 유다 신앙의 민낯을 드러낸다.

목차

1. 1979년, 예루살렘 무덤에서 벌어진 사고 같은 발견

1979년 여름, 예루살렘 구시가 남서쪽 힌놈 골짜기 절벽 위. 가브리엘 바르카이(Gabriel Barkay) 발굴 팀이 케테프 힌놈의 무덤군을 조사하던 중이었다. 당시엔 그저 오토만 시대 탄약고로 쓰이던 쓸모없는 동굴 정도로 평가받던 곳이다.

벤치 아래를 치우던 13살 자원봉사자가 망치로 바닥을 내리쳤고, 그 충격으로 막혀 있던 천장이 붕괴되면서 2,600년 넘게 봉인된 방 하나가 열렸다. 여기서 도자기, 철제 무기, 금·은 장신구 수백 점과 함께, 길이 1cm 남짓한 은판 두 개가 말려 있는 상태로 발견된다.

이 얇은 은판을 펴는 데만 3년이 걸렸다. 박물관 보존팀이 현미경 아래에서 한 글자씩 살려냈고, 그 결과 “고대 히브리어로 새겨진,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성경 구절”이 모습을 드러냈다.

2. “가장 오래된 성경 구절”이라는 말, 어디까지 맞는가

흔히 “사해 사본보다 400년 더 오래된 성경”이라는 문장이 유통된다. 방향성은 맞는데, 표현이 대충이라 좀 손질할 필요가 있다.

사해 사본은 대략 기원전 3~1세기 필사본이다. 케테프 힌놈 은 두루마리는 도자기 편년과 문자학 분석을 합쳐 보면 기원전 650년 전후, 늦어도 바벨론 함락 직전인 기원전 6세기 초로 잡힌다. 그러니 “사해 사본보다 약 400년 이상 앞선 성경 구절”이라는 말은 대체로 맞다.

다만 이 은판은 민수기 전체도 아니고, 우리가 아는 ‘성경 책’의 형태도 아니다. 더 정확한 표현은 이렇다.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성경 텍스트 조각”이다.

3. 은 부적 안에 새겨진 민수기 6장 제사장 축복

케테프 힌놈 은 두루마리는 KH1, KH2 두 개로 나뉜다. 그중 KH2는 내용이 명확하다. 우리가 지금도 예배 말미에 듣는 그 유명한 구절이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히브리어 어순과 어휘를 보면, 현재 우리가 가진 마소라 본문과 거의 같은 형태로 이미 기원전 7세기에 사용되고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포로기 이후에야 ‘P문서’(제사장 문서)가 생겨났다는 고전 다큐멘터리 가설에 제대로 한 방 먹이는 대목이다.

4. ‘부적(Amulet)’이라는 단어가 불러온 오해

여기서 많이들 헷갈리는 지점이 나온다. 이 은판은 학계에서도 분명히 “amulet(부적)”이라고 부른다.

실제로는 apotropaic amulet, 즉 “악을 물리치는 보호 장신구”라는 훨씬 기술적인 개념이다. 이건 점집이 아니라, 고대 근동 전역에서 통용되던 표준 종교 도구에 가깝다.

케테프 힌놈 은판도 마찬가지다. 크기는 작고, 얇은 은판을 돌돌 말아 목걸이나 끈에 꿰기 좋게 만든 형태다. 무덤 안에서는 귀걸이, 반지, 비드(구슬) 같은 장신구 사이에 섞여 발견됐다. 이건 책이 아니라, 몸에 지니는 신앙용 아이템이다.

5. 제사장의 말이 왜 ‘효력 있는 언어’였는가

민수기 5–6장을 통으로 보면 구조가 묘하게 정리되어 있다. 진영 정결 규례, 죄책감 배상, 나실인 서원, 그리고 제사장 축복. 공통점은 하나다. 제사장이 말을 하면 현실이 바뀐다고 믿었다는 점.

의심받는 아내(sotah) 의식에서는 저주의 말을 물에 녹여 마시게 한다. 나실인 규례에서는 선언 한 번으로 평신도를 일시적 ‘거룩 계급’으로 올려놓는다. 그리고 제사장 축복은 회중 전체를 하나님의 보호 아래로 편입시키는 언어적 행위다.

고대 유다에서 말, 특히 제사장의 말은 “효과가 있을 수도 있는 기도”가 아니라 “효과가 있는 언어 행위”에 가까웠다. 오늘날 설교가 해석이라면, 그때 제사장의 말은 일종의 스위치였다.

6. 포로기 이전에도 성경 텍스트가 존재했다는 결정적 증거

이제 가장 민감한 지점. 케테프 힌놈이 왜 학계에서 계속 언급되는지의 본론이다.

19세기 이후 성서학 주류는 “오경의 제사장 문서(P)는 바벨론 포로 이후, 페르시아 시대에나 정리됐다”는 가설에 기대어 왔다. 에스라·느헤미야에 나오는 “모세의 율법을 들고 왔다”는 기사도 그 줄기다.

그런데 케테프 힌놈은 말한다. “아니, 적어도 민수기 6장의 제사장 축복은 포로 100년 전에도 지금과 거의 같은 형태로 쓰이고 있었다.” 이 한 줄 때문에 P문서 후대 성립설은 최소한 “전체가 포로 이후”라는 식의 단순 도식으로는 유지되기 어렵게 됐다.

요약하면 이렇다. 포로기 이전에도 이미 성경 텍스트의 일부는 문서화되어 유통되고 있었다. 에스라가 한 건 “처음 집필”이 아니라, “기존 텍스트의 공적 정리 및 재편집” 쪽에 더 가깝게 보인다는 말이다.

7. 라기스 편지·시로암 비문이 말해 주는 문해(文解)의 수준

“아니, 그 시대에 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성경을 썼겠냐”는 반론도 있다. 여기서 다른 유물들이 증인으로 나온다.

라기스 편지(Lachish ostraca)를 보면, 포위전 상황에서 장교들이 서로 글을 주고받는다. “당신이 내가 못 읽는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지만, 저는 읽을 줄 압니다”라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최소한 군 장교 계층까지는 문자 사용이 평범했다는 얘기다.

시로암 비문(Siloam inscription)은 히스기야 터널 공사 기록을 터널 벽에 새긴 것이다. 토목공사 현장에 장문의 히브리어 비문이 남아 있다는 건, 예루살렘이 생각보다 글 모르는 촌이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이 증거들을 합치면, “철기시대 유다는 문해율이 너무 낮아서 성경 집필이 불가능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기록은 있었고, 다만 파피루스나 가죽 같은 재료가 썩어 남지 않았을 뿐일 가능성이 크다.

8. KH1의 다른 구절들: 정경 형성이 단순하지 않다는 증거

KH2가 민수기 6장이라면, KH1은 좀 더 복잡하다. 여기서는 출애굽기, 신명기, 나중 시대의 다니엘·느헤미야와 유사한 문구들이 뒤섞여 나온다. 공통 키워드는 “언약을 지키시고 사랑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다.

이건 한 가지를 보여준다. 이미 기원전 7세기 무렵부터 여러 전승 줄기에서 “핵심 문구”가 뽑혀 나와 재조합되고 있었다는 것. 지금 우리가 보는 최종본만 보고 “이 책은 저 시기, 저 책은 이 시기”라고 잘라버리는 건 너무 단순한 모델일 수 있다.

실제 신앙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특정 구절을 뽑아 암송하고, 부적처럼 몸에 지니고, 죽을 때까지 놓지 않으려 했다는 것. 정경은 회의에서 한 번에 정해진 게 아니라, 이렇게 몸에 새겨진 선호와 사용의 결과로 서서히 굳어졌다고 보는 편이 현실에 가깝다.

9. 무덤, 장신구, 은 두루마리: 죽음 이후까지 이어지는 보호 신앙

케테프 힌놈 무덤은 단순한 시신 창고가 아니다. 몇 세대에 걸친 가족이 함께 묻히는 일종의 “가문 납골당”이다. 그곳에 금·은 장신구, 도자기, 무기, 그리고 은 두루마리가 함께 놓인다.

이런 배치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이 사람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여호와의 축복과 보호 아래 있기를 원했다.” 제사장의 축복은 원래 회중을 향한 공적 선포였는데, 이제는 개인이 자기 이름표처럼 몸에 달고 간다.

여기에는 신앙과 ‘주술’의 경계가 거의 없다. 하나님의 이름과 축복 문장을 몸에 새겨 지닌다는 행위 자체가 곧 그분의 보호를 실질적으로 끌어온다고 믿은 것이다. 현대 신앙인의 감각으로 보면 다소 낯설지만, 고대 근동 전체로 보면 꽤 일상적인 패턴이다.

10. 나만의 에세이: “말씀을 은에 새긴 사람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케테프 힌놈 은 두루마리를 보면, 고대 유다인의 신앙이 딱 한 줄로 요약된다. “말씀은 읽는 게 아니라, 몸으로 들고 가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주로 “설명해야 할 텍스트”로 다룬다. 본문 비평, 문학 구조, 신학 주제… 다 중요한 작업이지만, 그 이전에 이 사람들은 그냥 그 한 줄을 은판에 새기고 죽을 때까지 붙잡고 있었다.

포로기 이전 성경 텍스트 존재 여부를 둘러싼 학계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누가 언제 최종본을 편집했든 간에, 이미 기원전 7세기 예루살렘에서 누군가는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신다”는 문장을 자기 인생의 보험증서처럼 목에 걸고 살았다.

이 장면 앞에서 “이건 주술이다, 저건 순수한 신앙이다”라고 잘라 말하는 쪽이 오히려 현대적 오만일지 모른다. 역사적으로 더 정직한 태도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고대인에게 말씀은 곧 힘이었고, 그 힘을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말씀을 은에 새겼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 믿음만큼은 지금 우리보다 한 수 위였을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

  • Barkay, G. (1990). Ketef Hinnom: A Treasure Facing the Walls of Jerusalem.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6(4), 22–41.
  • McCarter, K. P. (2015). The Ketef Hinnom Silver Scrolls. In W. G. Dever & S. Gitin (Eds.), Symbiosis, Symbolism, and the Power of the Past. Eisenbrauns.
  • Smoak, J. D. (2015). The Priestly Blessing: Numbers 6:24–26 in Ritual and Interpretation. Oxford University Press.
  • Millard, A. R. (1982). The Knowledge of Writing in Iron Age Palestine. Tyndale Bulletin, 33, 3–26.
  • Booth, M. B. (2021). The High Priest’s Holy Crown as a Protective Amulet. Studia Antiqua, 20(1), 2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