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고고학

사마리아 오스트라카: 포도주 영수증에 숨은 바알 신앙의 증거

scripture 2025. 12. 24. 01:02

도기 파편 102개가 폭로한 북이스라엘 상류층의 민낯. 기원전 8세기 사마리아 왕궁 저장고에서 발견된 오스트라카(토기 파편 문서)는 그저 포도주와 기름 배송 기록처럼 보인다. 하지만 거기 적힌 인명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바알자마르(바알이 노래한다)', '아비바알(나의 아버지는 바알이다)'—왕실 관료와 토지 소유자들의 이름에 바알이 수두룩하다는 건, 북이스라엘 엘리트가 얼마나 깊이 바알 신앙에 젖어 있었는지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성경이 비판한 '혼합주의'가 단순한 신학적 수사가 아니라, 행정문서에까지 박힌 역사적 사실이었던 것이다.

목차

1910년 하버드 발굴: 왕궁 저장고의 비밀

1910년, 하버드 대학교 발굴팀이 사마리아 왕궁 터 저장소에서 63~102개의 도기 파편을 발견했다. 이들은 기원전 8세기 초, 여로보암 2세 또는 그 아버지 여호아스 시대의 행정 문서였다.

오스트라카란 고대 사회에서 값비싼 파피루스나 양피지 대신 도기 조각에 먹으로 글을 쓴 것을 말하는데, 주로 임시 기록용이나 영수증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번영의 절정이었다.

여로보암 2세(기원전 793~753년)는 41년간 통치하며 영토를 레보-하맛에서 아라바 해까지 확장했고, 무역로 통제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바로 이 '황금기'의 이면을 사마리아 오스트라카는 기록하고 있다.

현재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보관된 이 파편들은, 한때 왕궁 관료들이 주고받던 송장이었다.

경제 시스템: 토지 지원금인가, 세금 영수증인가

오스트라카에 기록된 상품은 두 가지다: yn yšn(숙성 포도주)과 šmn rḥṣ(정제된 기름). 각 파편에는 왕의 통치 연도(9년, 10년, 15년), 상품 종류, 개인 이름, 므나세 지파의 하위 부족명, 마을 이름이 적혀 있다.

문제는 이게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느냐다. 학자들의 해석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세금 영수증 이론이다. 왕실 영토에서 걷은 현물 세금의 수령 기록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토지 지원금 제도 이론이다. 왕이 관료들에게 토지를 하사하되, 그 영토에서 거둔 수익(포도주, 기름)을 왕궁으로 배송하도록 강제한 시스템이라는 주장이다.

우가릿의 유사 사례가 이를 뒷받침한다. 어느 쪽이든, 왕실이 토지와 상품 흐름을 철저히 통제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2020년 알고리즘 분석 결과, 31개의 오스트라카를 단 두 명의 서기관이 작성했을 가능성이 95% 신뢰도로 밝혀졌다. 이는 문서 작성 권한이 중앙 집중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오스트라카는 파피루스 대장부로 옮겨지기 전의 임시 기록지였던 것이다.

인명 분석: 바알이 지배한 상류층의 이름들

이제 핵심으로 들어가자. 사마리아 오스트라카가 폭로하는 것은, 북이스라엘 상류층의 종교적 현실이다.

오스트라카에 등장하는 인명들 중 일부는 노골적으로 바알 신앙을 드러낸다:

  • Ba'alzamar (바알자마르): "바알이 노래한다"
  • Ba'alzochar (바알조카르): "바알이 기억한다"
  • 'Abiba'al (아비바알): "나의 아버지는 바알이다"
  • Ba'almeoni (바알므오니): 바알 관련 이름

이들은 왕궁 관료, 토지 소유자, 세금 징수 담당자였다. 개인의 신앙 선택이 아니라, 국가 엘리트 계층이 공식적으로 바알 신앙을 표방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인명 전체에서 보면 약 89%가 야훼 관련명이고 11%만 바알 등 이교 요소를 포함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왕실 행정 문서인 오스트라카에서는 바알 이름의 비율이 훨씬 높게 나타난다.

상류층과 일반 민중의 종교적 지형이 달랐던 것이다.

역사 맥락: 아합부터 여로보암 2세까지

이 현상을 이해하려면 북이스라엘의 종교 정책사를 추적해야 한다.

9세기 아합 왕(기원전 874~853년)은 페니키아 시돈의 이제벨을 아내로 맞았다. 이제벨의 아버지 이름이 '에드바알(바알이 살아있다)'이었듯, 왕실은 바알 숭배를 국교화하려 했다.

1열왕기 16장에 따르면, 아합은 바알 사당과 제단을 건설했고, 아세라 상(바알의 배우자)까지 세웠다. 바알의 예언자 450명, 아세라의 예언자 400명을 양성했으며, 야훼의 선지자들을 박해했다.

엘리야가 1열왕기 18:21에서 "두 의견 사이를 절뚝거린다"고 비판한 것이 바로 이 혼합주의였다.

그로부터 약 100년 뒤 여로보암 2세 시대(8세기 초)에는 공식 바알 숭배가 유지되되, 형태가 변했다. 북이스라엘의 종교는 '야훼+바알' 혼합주의였다. 야훼를 버린 것이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를 덧붙인 것이다.

오스트라카의 인명들—특히 토지 소유자와 관료들의 이름에 바알이 많이 등장한 것은, 상류층이 이 혼합주의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야훼는 여전히 공경되었지만, 바알은 경제적 번영을 주는 실질적인 신으로 여겨졌다.

언어의 증거: 페니키아 영향권 속의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오스트라카는 언어적으로도 중요한 증거를 남긴다. 오스트라카의 히브리 텍스트에는 북이스라엘 방언의 특징이 명확하게 나타난다.

단모음화(monophthongization)가 그것인데, 이중모음 "ay"가 "ē"로 축약되어, 포도주를 뜻하는 단어가 ין (īn)이 되었다. 남유다에서는 여전히 יין (yayin)이었다.

또한 언어 특징상 페니키아 언어와의 인접성을 시사한다. 이는 단순한 발음 차이가 아니다.

북이스라엘, 특히 사마리아가 페니키아 무역권 내에 얼마나 깊이 통합되어 있었는지를 언어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 상류층뿐 아니라 일반 인구도 페니키아의 영향권 내에서 살고 있었다.

사회 불평등: 상아와 포도주, 그리고 아모스의 분노

사마리아 오스트라카의 또 다른 증거는 선지자 아모스의 비판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아모스(기원전 750년경 활동)는 여로보암 2세 말년이나 그 직후에 북이스라엘을 방문했을 것이다. 그가 비판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왕궁 관리들과 토지 소유자들은 포도주와 기름으로 사치를 누리면서, 가난한 자들은 짓밟았다는 것.

동시에 발굴된 사마리아 상아 조각(Samaria Ivories)은 이 불평등의 물질적 증거다. 1910년 발굴에서 무려 500개 이상의 상아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왕궁 가구와 장식에 사용된 페니키아 양식의 사치품이었다.

1열왕기 22:39의 "상아로 장식한 왕궁"이 바로 이 고고학적 증거다. 이 상아들은 동물, 신화적 존재, 이집트 신들을 표현했으며, 페니키아 무역 네트워크를 통해 수입된 것이었다.

상류층이 바알을 신앙한 이유는 종교적 열정만이 아니었다. 페니키아와의 무역 네트워크, 그 네트워크에서 얻은 경제적 번영이 바알 신앙과 얽혀 있었다. 바알은 폭풍과 비의 신이자, 페니키아를 통한 무역과 사치의 신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나만의 시선: 오스트라카가 증명하는 것

사마리아 오스트라카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한 가지 질문에 도달한다. 왜 성경의 선지자들은 바알 신앙을 그토록 격렬하게 비판했을까?

단순히 신학적 순수성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오스트라카가 보여주는 건, 바알 신앙이 경제적 착취와 불평등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포도주와 기름을 왕궁으로 실어 나르는 농민들, 그들의 땀은 왕실 관료들의 상아 가구와 사치품으로 변했다. 그 관료들의 이름에는 '바알자마르', '아비바알'이 박혀 있었다.

바알 신앙은 페니키아 무역 네트워크와 결합하여, 북이스라엘 상류층의 경제적 이익을 정당화하는 종교로 기능했다. 엘리야와 아모스가 비판한 것은 단순한 우상숭배가 아니라, 그 우상숭배를 통해 유지되는 불의한 경제 시스템이었다.

오스트라카는 그저 배송 영수증이 아니다. 이것은 한 왕국의 경제 구조, 종교 정책, 그리고 사회 불평등이 모두 압축된 1차 사료다.

102개의 도기 파편이 증언하는 것은, 신앙이 결코 개인의 내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앙은 경제 시스템과 얽히고, 권력 구조를 정당화하며, 때로는 억압의 도구가 된다. 사마리아 오스트라카는 바로 그 역사적 순간을 기록한 증거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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