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고고학

[검은 오벨리스크] 혁명가 예후, 제국의 신발을 핥다: 성경이 침묵한 그날

scripture 2025. 12. 24. 23:27
검은 오벨리스크: 예후의 굴욕

성경 독자들에게 이스라엘 왕 '예후'는 어떤 이미지입니까? 병거를 미친 듯이 몰며(왕하 9:20), 이세벨을 창 밖으로 던지고 바알 숭배자들을 학살한 '광야의 불도저' 같은 사내일 것입니다.

그런데, 런던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한구석에 서 있는 검은 돌기둥 앞에서는 그 카리스마가 박살이 납니다. 그곳엔 불도저가 아니라, 살기 위해 제국의 황제 앞에 납작 엎드린 한 초라한 남자가 있을 뿐입니다.

성경 열왕기하가 굳이 기록하지 않았던, 혹은 기록하고 싶지 않았던 '혁명가의 비참한 외교 성적표'. 오늘은 그 불편한 진실을 파헤쳐 봅니다. 믿음의 눈이 아니라, 냉정한 고고학의 렌즈를 끼고 오십시오.

1. 니므루드의 검은 돌: 샬만에세르 3세의 전리품 목록

1846년, 고고학자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Austen Henry Layard)가 고대 앗수르의 수도 니므루드(칼후)에서 높이 약 2m의 검은 석회암 기둥을 발굴합니다. 이것이 바로 '검은 오벨리스크(The Black Obelisk)'입니다.

이 돌은 기원전 825년경, 신아시리아 제국의 정복 군주 샬만에세르 3세(Shalmaneser III)가 자신의 31년 통치 기간 동안 거둔 군사적 업적을 자랑하기 위해 세운 일종의 '프로파간다 비석'입니다.

사면에는 5단으로 구성된 부조가 새겨져 있고, 각 단에는 제국에 무릎 꿇은 5명의 외국 왕들이 조공을 바치는 모습이 영화 필름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만큼이나 웅장하지만, 패배자 입장에서는 피눈물 나는 기록입니다.

2. 두 번째 패널의 충격: "오므리의 아들 예후"

우리의 시선이 멈춰야 할 곳은 위에서 두 번째 줄입니다. 뾰족한 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땅바닥에 코가 닿을 듯 엎드려 있습니다. 뒤에는 앗수르 관리들이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봅니다.

쐐기문자(Akkadian) 명문은 이 남자의 정체를 충격적으로 폭로합니다.

"오므리의 아들 예후(Iaua, mar Humri)의 조공. 나는 그에게서 은, 금, 금 그릇, 금 잔..."

여기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폭발합니다. 예후가 누구입니까? 바로 오므리 왕조(아합 가문)를 멸절시키고 왕위를 찬탈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앗수르 제국은 그를 여전히 "오므리의 아들(자손)"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앗수르의 정보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당시 북이스라엘 국력이 오므리 왕조 때 얼마나 강력했는지, 앗수르인들에게 이스라엘은 그저 '비트 훔리(Bit-Humri, 오므리의 집)'라는 브랜드로 통했다는 반증입니다. 예후는 자신이 죽인 전 왕조의 간판을 달고 머리를 조아린 셈입니다.

3. 팩트체크: 왜 성경은 이 사건을 누락했는가?

열왕기하 9~10장은 예후의 쿠데타와 바알 숭배 척결에 많은 지면을 할애합니다. 그러나 기원전 841년경 발생한 이 치욕적인 조공 사건은 단 한 줄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첫째, 성경은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 신학적 해석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저자(신명기 사가)의 관심은 예후가 '야훼의 도구'로서 배교자들을 심판했다는 점에 있지, 그가 국제 정세 속에서 얼마나 비굴했는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둘째, 정치적 실패의 은폐일 가능성이 큽니다. 예후의 쿠데타는 필연적으로 외교적 고립을 불렀습니다. 전 왕조(오므리-아합)는 페니키아(이세벨의 고향) 및 남유다와 강력한 동맹을 맺고 있었습니다. 예후가 이들을 다 죽였으니, 북쪽의 아람(다마스쿠스) 왕 하사엘이 쳐들어올 때 도와줄 우방이 전무했습니다.

결국 예후는 아람을 견제하기 위해, 더 먼 곳의 깡패인 앗수르에게 자진해서 "형님"이라 부르며 바짓가랑이를 잡은 것입니다. 이는 '야훼 신앙의 회복'을 외친 혁명가치고는 너무나 세속적인 생존 방식이었기에, 성경 기자 입장에서는 굳이 적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4. 굴욕의 대가: 그가 바친 막대한 조공 리스트

그저 머리만 숙인 게 아닙니다. 오벨리스크에 기록된 조공 목록을 보면 예후가 나라의 기둥뿌리를 뽑아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은(Silver)
  • 금(Gold)
  • 금 그릇(Golden bowl)과 금 잔(Golden tumblers)
  • 왕의 손에 들려야 할 홀(Scepter)
  • 창(Spears)

특히 '홀(Scepter)'을 바쳤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큽니다. "내 왕권은 당신 것입니다"라는 주권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습니다. 고고학적으로 이 장면은 고대 근동 미술사에서 이스라엘 왕의 모습이 묘사된 유일무이한 사례입니다. 하필이면 가장 비굴한 순간이 역사에 박제된 것입니다.

5. [에세이] 생존이라는 이름의 비굴함에 대하여

우리는 흔히 성경 속 인물을 영웅 아니면 악당으로 이분법화하길 좋아합니다. 바알을 때려잡은 예후는 '개혁의 아이콘'이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대영박물관의 차가운 돌덩이는 그가 뜨거운 신앙인이기 이전에,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약소국의 위태로운 정치인이었음을 증언합니다.

예후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그는 내부의 적(아합 가문)을 제거하느라 외부의 방패(페니키아, 유다 동맹)를 잃었습니다. 바로 옆의 늑대(아람)가 물어뜯으려 하자, 그는 먼 곳의 사자(앗수르)에게 고기를 던져주고 목숨을 구걸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는 행위'였을지 모르나, 통치자로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정치(Realpolitik)'였을 겁니다.

신앙의 명분과 생존의 현실. 그 사이에서 납작 엎드린 예후의 등짝은, 오늘날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어느 반도 국가의 운명과도 묘하게 겹쳐 보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단지 배우만 바뀔 뿐입니다.

참고문헌
Luckenbill, D. D. (1927). Ancient Records of Assyria and Babylonia (Vol. 1). University of Chicago Press.
Oppenheim, A. L. (1969). "Babylonian and Assyrian Historical Texts." In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3rd ed.). Princeton University Press.
British Museum Collection Database (Object: The Black Obelis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