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판티네의 유대인들, 예루살렘 율법을 비웃다—나일 섬에 세워진 '이단' 성전의 비밀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 제국 변경의 작은 섬.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000km 떨어진 이곳에서 유대인들은 야훼 제2성전을 짓고 향을 피웠다. 문제는 그들이 신명기 율법(단 하나의 성전)을 정면으로 위반했을 뿐 아니라, 야훼 옆에 아나트-야후와 아심-베텔이라는 여신·신을 동석시켰다는 점이다. 1907년 발굴된 파피루스 문서들은 우리가 아는 '정통 유대교'가 얼마나 나중의 편집물인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목차
- 엘레판티네, 페르시아의 칼날이 된 유대 용병들
- 야훼 성전의 실체—예루살렘과 다른 제사 체계
- 아나트-야후와 아심-베텔: 다신교로 돌아간 유일신 신앙
- 예루살렘의 분노—에스라·느헤미야 개혁의 진짜 적
- 왜 엘레판티네는 묻혔을까? 정통의 승리와 이단의 소거
엘레판티네, 페르시아의 칼날이 된 유대 용병들
엘레판티네(Elephantine, 고대명 예브)는 아스완 제1폭포 바로 아래 위치한 전략 요충지다. 기원전 525년,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를 정복한 후 이곳에 유대인 용병 부대(Judean military colony)를 배치했다. 그들의 임무? 이집트 남부 반란 세력과 누비아를 견제하는 것.
파피루스 문서에 따르면 이들은 페르시아 총독 직속으로 급여를 받았고, 곡물 배급과 토지 소유권을 보장받았다. 즉, 종교적 순례자가 아니라 제국의 직업 군인이었다. Porten(1968)은 이들을 "Diaspora Judaism의 최초 형태"로 규정했지만, 그들의 신앙은 예루살렘 제사장들이 볼 때 '형태'조차 아니었을 것이다.
야훼 성전의 실체—예루살렘과 다른 제사 체계
TAD A4.7(기원전 407년) 문서는 충격적이다. 엘레판티네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총독 바고히(Bagoas)에게 청원서를 보내 "우리의 신전(בית אלהא, beit elaha)이 파괴되었으니 재건을 허락해달라"고 요청한다. 여기서 '신전'은 예루살렘이 아닌 엘레판티네 자체의 야훼 제단을 가리킨다.
문서는 "우리가 향과 번제를 드렸다(מנחה וקרבן, minḥah u-qorban)"고 명시한다. 신명기 12:13-14는 "네가 보는 각 곳에서 번제를 드리지 말라"고 금지했지만, 엘레판티네인들은 최소 기원전 6세기부터 자체 제단을 운영했다. Kraeling(1953)은 이들의 제사 용어가 예루살렘과 동일함을 입증했다—즉, 그들은 스스로를 이단으로 여기지 않았다.

아나트-야후와 아심-베텔: 다신교로 돌아간 유일신 신앙
진짜 폭탄은 TAD C3.15(기원전 5세기 중반)에서 터진다. 맹세 명단에 "야후(야훼의 단축형), 아나트-베텔, 아심-베텔"이 나란히 등장한다. 아나트는 가나안의 전쟁 여신, 베텔은 '신의 집'이라는 뜻의 신격화된 존재다. Porten(1968)은 이를 "syncretism(혼합주의)"로 분류했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이건 혼합이 아니라 원형으로의 회귀다.
왜냐하면 기원전 8세기 쿤틸렛 아즈루드(Kuntillet Ajrud) 비문에도 "야훼와 그의 아세라(YHWH and his Asherah)"라는 표현이 나오기 때문이다. 엘레판티네인들은 예루살렘의 요시야 개혁(기원전 622년) 이전의 가나안식 야훼 숭배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Smith(2002)는 이를 "monolatry(단일신 숭배, 다른 신의 존재는 인정)"로 정의했다.
예루살렘의 분노—에스라·느헤미야 개혁의 진짜 적
에스라 10장은 이방인 아내를 추방하는 장면으로 악명 높다. 느헤미야는 성벽을 쌓으며 "유다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파피루스는 엘레판티네인들이 이집트 여성과 결혼하고, 페르시아 법정에 소송을 걸고, 이방 신전 옆에서 야훼를 섬겼다는 걸 보여준다.
TAD A4.8(기원전 407년)에서 그들은 예루살렘 대제사장에게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답장은 없었다. 예루살렘 입장에서 엘레판티네는 '구제 불능의 이단'이었다. 에스라-느헤미야가 막으려 했던 건 바빌론 귀환자 내부의 혼합주의가 아니라, 디아스포라 전체의 느슨한 신앙이었던 셈이다.
왜 엘레판티네는 묻혔을까? 정통의 승리와 이단의 소거
기원전 399년경, 엘레판티네 성전은 다시 파괴되고 역사에서 사라진다. 페르시아 제국의 약화와 이집트 제사장 세력의 반격이 원인이었지만, 예루살렘은 그들을 구하지 않았다. 이후 랍비 유대교는 엘레판티네를 철저히 망각했다—탈무드 어디에도 그들의 흔적은 없다.
왜? 정경화 과정(기원전 5-2세기)에서 신명기 사가(Deuteronomistic Historian)들은 "단 하나의 성전, 단 하나의 율법"이라는 내러티브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엘레판티네는 그 서사를 파괴하는 증거였다. Schmid(2012)는 이를 "canonical amnesia(정경적 기억상실)"로 명명했다.
나만의 에세이: 엘레판티네가 묻는 질문
엘레판티네 파피루스는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정통 유대교는 언제부터 정통이었을까?" 우리가 아는 유일신교는 바빌론 유수(기원전 586년) 이후 제사장 계급이 생존을 위해 급조한 교리 체계일 수 있다. 엘레판티네인들은 그 이전의 느슨하고 다층적인 신앙을 간직한 화석이었다.
과연 누가 이단이었을까? 선조의 신앙을 지킨 나일강 용병들인가, 아니면 페르시아 제국의 지원을 받아 교리를 재편한 예루살렘 엘리트인가? 파피루스는 답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진실'이라 믿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승자의 기록인지를 보여줄 뿐이다.
참고문헌
- Porten, B. (1968). Archives from Elephantine: The Life of an Ancient Jewish Military Colon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 Kraeling, E. G. (1953). The Brooklyn Museum Aramaic Papyri. Yale University Press.
- Smith, M. S. (2002). The Early History of God: Yahweh and the Other Deities in Ancient Israel (2nd ed.). Eerdmans.
- Schmid, K. (2012). The Old Testament: A Literary History. Fortress Press.
- Textual references: TAD (Textbook of Aramaic Documents from Ancient Egypt), ed. Porten & Yardeni (1986-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