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로메 동굴: 초기 기독교 민간 신앙 연구
살로메 동굴(Salome Cave) 2022년 공개
초기 기독교 민간 신앙이 고고학 현장에서 펼쳐지다

기본 발견
이스라엘 문화재청(IAA)이 2022년 예루살렘 남서쪽 약 35km 떨어진 라키스 숲(Lachish Forest) 인근의 살로메 동굴을 공개했습니다. 이 동굴은 제2성전시대(1세기 BCE~1세기 CE)의 정교한 유대인 귀족 매장 무덤으로, 비잔틴 시대(5~9세기 CE)에 초기 기독교인들의 순례지로 변모했습니다.
핵심 의의: 신약성서 정경에는 없지만 외경(야고보 원복음서)에만 나오는 전승이 실제 고고학 현장에서 어떻게 숭배 장소로 발전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목차
🏛️ 건축학적 특징 및 고고학적 발견
살로메 동굴은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가장 정교한 매장 부동산 중 하나입니다. 약 350제곱미터(3,767제곱피트)의 광장을 갖춘 이 복합 건축물은 다음과 같은 구성 요소를 포함합니다:
- 6개의 석주를 갖춘 광활한 현관: 입구 영역의 위엄성을 과시하는 건축 설계
- 여러 장의 매장실: 대가족의 매장을 위한 다중 무덤 공간
- 암석을 깎아 만든 매장 감실(kokhim): 시신을 안치하는 전통적 유대식 매장 방식
- 모자이크 바닥과 석판: 부유한 유대인 가족의 무덤 특징을 보여주는 정교한 장식
💡 최근 2022-2023년 발굴에서 고고학자들은 광장 입구에서 정교한 전정(forecourt)을 발견했습니다. 이곳에는 복잡한 석재 조각, 웅장한 아치, 그리고 무려 수백 개의 기름 등잔이 매장되어 있었습니다.
이 등잔들은 순례자들이 동굴 내부를 밝히기 위해 대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발견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공공 순례지로 운영되었던 이력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2025년 'Atiqot 저널에 발표된 정식 고고학 보고서는 이 동굴의 건축학적 복잡성과 종교적 용도의 변화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 원래 주인에 대한 이론: 헤롯의 누이 살로메
2025년 'Atiqot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서 고고학자 니르-심손 파란(Nir-Shimshon Paran)과 블라디크 리프시츠(Vladik Lifshits)는 이 무덤이 헤롯 대왕의 누이 살로메 1세(c. 65 BCE–10 CE)의 소유였을 가능성을 제안합니다.
살로메 1세의 신분과 권력
- 헤롯 궁정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으로, 황제 아우구스투스와도 직접 서신을 주고받은 인물
- 광대한 재산 소유자로, 팔레스타인 전역에 부동산을 보유
- 정치적 영향력: 헤롯의 유언에 따라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기록
무덤의 거대함이 살로메 1세를 가리키는 증거
- 지리적 위치: 무덤이 이두매 중심지인 마레샤 근처에 위치 (살로메의 알려진 영토)
- 건축의 정교함: 같은 시대 예루살렘의 다른 귀족 무덤과 비교해도 더 크고 정교함
- 규모: 약 350제곱미터의 광장은 당시 표준을 훨씬 초과하는 규모
- 장식 수준: 석재 조각, 모자이크, 아치 등 1세기 BCE 최고 수준의 장인 기술
🔍 역사 기록 vs. 고고학 증거: 조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살로메 1세는 여성으로서는 극히 드문 권력을 행사했으며, 헤롯 사후 자신의 재산을 황제 아우구스투스에게 기증했을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 초기 기독교 민간 신앙의 발전
살로메 동굴의 중요성은 비잔틴 시대(약 5-9세기 CE)에 유대인 무덤이 기독교 순례지로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물리적 기독교화의 증거
- 제단과 앱스 건설: 동굴 내부에 기독교 예배를 위한 구조 설치
- 그리스어 비문: 동굴의 벽에 새겨진 수십 개의 그리스어, 시리아어, 아랍어 비문
- 명시적 헌정: 두 개의 비문은 명확히 "성인 살로메"에 동굴을 봉헌했다고 기록
- 순례자의 흔적: 수백 개의 기름 등잔, 헌물, 그리피티 형태의 기도문
외경과의 연결: 야고보 원복음서
신약성서 정경에는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살로메"라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2세기 CE 저술된 외경인 야고보 원복음서(Proto-Gospel of James, Protevangelium Jacobi)에는 살로메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야고보 원복음서의 살로메: 산파(조산부)가 아니라 마리아의 처녀 출산을 의심하는 증인
- 핵심 이야기: 산파가 살로메에게 마리아가 처녀로 아이를 낳았다는 사건을 알림
- 의심과 확인: 살로메는 의심하며 직접 확인하려고 들었고, 그 결과 손이 불에 타는 듯이 마르게 됨
- 기적의 치유: 천사가 나타나 아기를 안으라고 명령하자 살로메는 아기를 안고 치유됨
📖 정경 vs. 외경: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살로메가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직 초대 교회의 외경 전승에서만 예수의 신비한 탄생을 증거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 신앙 공간의 발전 메커니즘
비잔틴 시대 초기 기독교인들은 유대인 유적지를 만나면서 그곳을 기독교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광범위한 현상을 보였습니다. 살로메 동굴의 경우, 유대인 귀족 무덤이 어떻게 단계적으로 기독교 순례지가 되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1단계: 초기 식별
비잔틴 시대 순례자들이 이 무덤을 "살로메"라고 호칭합니다. "살로메"라는 이름 자체가 유대인과 기독교 전통 모두에서 흔한 이름이었으므로, 원래 무덤의 주인이 이 이름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2단계: 외경의 영향
야고보 원복음서가 초기 기독교 시대에 광범위하게 읽혔을 때, 기독교인들은 이 무덤을 야고보 원복음서에 나오는 살로메(예수의 탄생과 관련된)와 연결지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는 종교적 상상력이 물리적 공간을 어떻게 신성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3단계: 물리적 신성성 부여
비잔틴 시대 기독교인들은 동굴을 기독교 예배당으로 개조했습니다. 내부에 제단과 앱스를 건설하고, 벽에 십자가와 헌정 비문을 새겼으며, "성인 살로메"에 봉헌했습니다.
4단계: 지속적인 순례 활동
8-9세기까지 그리스어, 시리아어, 아랍어 비문과 함께 수백 개의 기름 등잔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순례자들이 계속해서 이 장소를 방문하고 의식을 수행했음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관광적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한 종교적 신뢰(faith)로 발전했을 것입니다.
🎯 공간과 기억의 정치학: 비잔틴 기독교인들은 단순히 "비어있는" 무덤을 발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미 유대인 전통의 무게가 있는 공간을 자신들의 신앙으로 재해석하고 점유했습니다.
📚 초기 기독교 민간 신앙 연구의 의미
살로메 동굴의 사례는 초기 기독교의 민간 신앙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고고학적 증거입니다:
외경의 영향력
신약성서 정경에 포함되지 않았던 야고보 원복음서의 살로메 이야기가 실제 물리적 공간에 기독교 의례의 초점을 맞추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가 정경뿐 아니라 외경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음을 보여줍니다.
종교적 동일시와 기억
비잔틴 시대 기독교인들은 물리적 공간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기억과 신화를 연결했습니다. 특정 이름이 있는 무덤을 발견하면, 그것을 종교적 전승의 인물과 동일시하는 방식으로 성지(sacred site)를 창조해냈습니다.
다중 종교 정체성
살로메 동굴은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종교 전통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유대인 엘리트 무덤 → 기독교 순례지 → 이슬람 전통에서도 경의를 받는 공간으로 변모한 이 과정은 초기 중세 지중해 세계에서 종교 간 공간 공유의 복잡성을 보여줍니다.

💭 나만의 통찰: "이름 위에 지어진 신성성"
살로메 동굴의 사례는 현대의 "팩트체크" 시대에 우리가 놓치기 쉬운 한 가지 진실을 상기시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 무덤을 야고보 원복음서의 살로메와 동일시한 것이 "실수"였는지, 아니면 "창조적 해석"였는지는 사실 덜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한 이름을 통해 공간을 신성화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종종 종교를 "정확한 신학"의 문제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살로메 동굴은 종교가 얼마나 깊이 있게 "물리적"이고 "공간적"인지를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추상적인 신앙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들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 발로 밟을 수 있는 것,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잔틴 순례자들이 살로메 동굴의 벽을 만지고 기름 등잔을 밝힌 것은 그 공간이 "진짜"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야고보 원복음서가 정경이 아니었지만, 그 공간은 정경만큼이나 "거룩했던"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이 일방적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틀린 무덤"을 숭배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유대인 무덤의 무게와 권위를 자신들의 신앙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이것은 종교 간 공간 공유의 가장 오래된 형태일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가 이슬람, 유대교와 어떻게 같은 공간을 나누었는가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입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역사는 항상 "올바른" 기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때로 그것은 한 번의 이름 호출, 한 번의 기름 등잔의 불빛, 한 번의 손 터치로부터 시작됩니다. 살로메 동굴은 그렇게 만들어진 신앙의 공간입니다.
📖 참고문헌
[1] Paran, N.-S., & Lifshits, V. (2025). The Cave of Salome: A Second Temple Period Royal Burial Estate in the Judean Shephelah. 'Atiqot, 117(1).
[2] Times of Israel (2022). Who was buried in Salome's cave: A disciple of Jesus, a midwife or a Jewish queen? December 20, 2022.
[3] KKL-JNF (2022). Who are you, Salome? Keren Kayemeth LeIsrael - JNF Green Israel News. December 20, 2022.
[4] Arkeo News (2025). Burial Cave in Israel May Belong to Herodian Princess Salome. July 5, 2025.
[5] PBS NewsHour (2022). Archaeologists excavate 'Jesus's midwife' tomb in Israel. December 19, 2022.
[6] Bible History Daily (2025). Was the Cave of Salome for Jesus's Disciple or a Herodian Princess? June 15, 2025.
[7] Heritage Daily (2022). 2000-year-old burial cave linked to Salome from nativity. December 20, 2022.
[8] Wikipedia (2008). Salome (Gospel of James). Retrieved 2025.
[9] New Advent. Protoevangelium of James. Church Fathers Collection.
[10] Marg Mowczko. The Intrigues of Salome I, Herod the Great's Sister. Historical Analy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