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군인 급여 명세서의 충격: "월급날인데 통장 잔고 0원"
로마 군인 급여 명세서의 충격: "월급날인데 통장 잔고 0원"
기원후 72년, 마사다 요새. 로마 보조병 가이우스 메시우스는 50 데나리우스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군복비, 식비, 장비비를 떼고 나니 손에 남은 돈은 정확히 0원이었다. 1,900년 전 파피루스 급여 명세서가 드러낸 것은 "로마의 영광"이 아니라, 제국 변방 병사의 고단한 현실이었다.
목차
- 마사다에서 발굴된 파피루스의 정체
- 월급 50 데나리우스, 공제 내역 100%
- 그럼 병사들은 어떻게 먹고살았나?
- 유대 전쟁과 마사다 포위전의 경제학
- 로마의 압제, 경제 구조로 다시 읽기

마사다에서 발굴된 파피루스의 정체
2023년, 이스라엘 고고학청(IAA)이 공개한 이 파피루스는 로마제국 전체에서 발견된 단 3개의 군단병 급여 명세서 중 하나다. 메시우스는 베이루트 출신 파비아 부족 소속 보조병으로, 총독 루시우스 플라비우스 실바가 지휘하는 10 프레텐시스 군단에서 복무했다.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제4기 황제 베스파시아누스 아우구스투스의 통치 기간. 나는 50 데나리우스의 급여를 받았으며, 이 중에서 보리사료비 16 데나리우스, 식비 20 데나리우스, 군화 5 데나리우스, 가죽 장비 2 데나리우스, 린넨 튜닉 7 데나리우스를 지불했다."
마사다는 기원후 72-73년 유대-로마 전쟁의 마지막 격전지였다. 약 960명의 유대 저항군 시카리가 농성했고, 로마는 15,000명의 병력으로 요새를 포위했다. 메시우스의 급여 명세서는 바로 이 포위전 와중에 작성된 1차 사료다.
월급 50 데나리우스, 공제 내역 100%
메시우스의 급여에서 빠져나간 항목을 보자:
- 보리사료비 16 데나리우스 (32%): 보조병은 군마를 관리해야 했다. 말과 노새 먹이 값은 본인 부담이었다.
- 식비 20 데나리우스 (40%): 가장 큰 지출. 병사의 일일 식량 비용이 급여의 절반 가까이를 잡아먹었다.
- 군화 5 데나리우스 (10%): 군용 부츠도 자비 구매.
- 가죽 장비 2 데나리우스 (4%): 가죽 끈과 각종 장비 수선비.
- 린넨 튜닉 7 데나리우스 (14%): 속옷이나 셔츠 구입비.
합산하면 정확히 50 데나리우스. 잔액 0원이다. 이스라엘 고고학청의 선임 큐레이터 Dr. Oren Ableman은 이렇게 말했다: "공제액이 병사의 급여를 거의 초과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직업의 위험성을 고려할 때, 병사들이 급여만을 위해 군대에 머물렀다는 것은 명확하지 않다."
그럼 병사들은 어떻게 먹고살았나?
공식 급여가 0원이라면, 메시우스 같은 병사들은 대체 어떻게 생존했을까? 답은 비공식 수입에 있다.
첫째, 약탈이다. 군사 작전 중 적의 재산을 빼앗는 행위는 묵인되거나 심지어 장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사다 포위전 종료 후 로마군이 요새 내부 재산을 챙겼을 것은 충분히 추정 가능하다.
둘째, 고리대금업이다. 기원후 132-135년 Bar Kokhba 반란 시기 발견된 문서에 따르면, 한 로마 병사가 유대인 주민에게 법정 이율보다 높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병사들은 급여는 0원이지만, 약탈이나 뇌물로 모은 자금을 고리대금으로 불렸던 셈이다.
셋째, 주둔지 근처에서의 상업 활동이다. 군인들은 현지 주민들에게 물건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며 추가 수입을 올렸을 것이다.
유대 전쟁과 마사다 포위전의 경제학
마사다 요새는 헤롯 대왕이 기원전 37-31년 사이 건설한 왕궁 겸 요새였다. 유대-로마 전쟁(66-74 CE) 중 시카리라는 유대 저항 단체가 이곳을 점령했고, 로마는 기원후 72년경 대규모 포위전을 시작했다.
로마군은 서쪽 사면에 높이 61미터의 거대한 공성 경사로를 건설했고, 13개월 만인 기원후 73년 4월 요새를 함락시켰다.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에 따르면 약 960명의 방어군이 자결을 선택했다고 전해진다.
이 와중에 메시우스 같은 병사들은 월급 0원에 목숨을 걸고 싸웠다. 제국의 확장 전쟁은 변방 병사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급여 명세서가 증명한다.
로마의 압제, 경제 구조로 다시 읽기
전통적으로 "로마의 압제"는 정치·군사적 강압으로 이해되어 왔다. 하지만 메시우스의 파피루스는 경제적 착취의 차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로마 군부는 병사들에게 무기, 음식, 의류, 심지어 군마 사료까지 "제공"하면서도 그 비용을 급여에서 100% 차감했다. 결과적으로 병사들은 월급날이 되어도 손에 남는 돈이 없었다. 생존을 위해서는 약탈이나 고리대금업 같은 비공식 활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제국이 속주를 통제하는 방식이 단순한 군사 점령을 넘어, 경제적 구조를 통한 체계적 착취였음을 보여준다. 유대 지역 주민들도 비슷한 세금 부담과 경제적 압박 속에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병사들이 주민에게 고리대금을 놓았다는 것은, 피지배자가 또 다른 피지배자를 착취하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다.
나만의 에세이: 급여 명세서가 증언하는 제국의 민낯
메시우스의 급여 명세서는 고대사 연구에서 흔히 간과되는 지점을 찌른다. 우리는 로마를 "정복자"로, 유대를 "피정복자"로 단순 도식화한다. 하지만 이 파피루스는 정복자 내부에도 계급이 있었고, 그 최하층은 피정복자만큼이나 착취당했음을 폭로한다.
메시우스는 자신의 월급이 0원이 되는 구조 속에서, 유대인을 진압하고 약탈하며 생존했다. 그에게 "로마의 영광"은 허상이었다. 그가 경험한 것은 제국이라는 거대한 기계가 돌아가기 위해 변방의 인간들을 어떻게 소모품으로 쓰는지였다.
이 파피루스는 질문을 던진다. 로마의 압제는 누구에게 가장 가혹했는가? 유대인인가, 아니면 유대를 진압하러 온 로마 병사인가? 아마도 둘 다일 것이다. 제국은 양쪽 모두를 착취했고, 그 착취 구조를 "질서"라 불렀다.
참고문헌
Cotton, H. M., & Geiger, J. (1989). Masada II: The Yigael Yadin Excavations 1963-1965, Final Reports - The Latin and Greek Documents. Israel Exploration Society.
Speidel, M. A. (1992). "Roman Army Pay Scales." The Journal of Roman Studies, 82, 87-106.
Stiebel, G. D. (2007). "A Siege Remembered: Masada in Jewish Memory."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3(5).
Israel Antiquities Authority. (2023). Press Release: Roman Legionnaire's Payslip from Mas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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