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그저 유대 산골의 '촌장' 수준이었다고 주장하던 학자들에게, 키르벳 케이야파는 20만 톤의 돌덩이로 무겁게 대답했다. "촌장은 이런 요새 못 짓는다."
목 차
지난 수십 년간 성경 고고학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다윗 왕조의 규모'였다.
소위 '미니멀리스트(최소주의자)' 학자들은 성경의 기록이 후대에 부풀려졌으며, 기원전 10세기 다윗은 기껏해야 베두인 족장 수준의 리더였을 것이라 깎아내렸다. 예루살렘에서 그 시기의 거대한 건축물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들의 주무기였다.
그런데 2007년, 예루살렘 서쪽 엘라 골짜기(Elah Valley)를 굽어보는 언덕 위에서 발견된 요새 도시는 이 논쟁의 판을 완전히 뒤집어 엎었다. 바로 키르벳 케이야파(Khirbet Qeiyafa)다.
1. 논란의 핵심: 다윗 왕국은 실존했나, 과장인가?
고고학은 믿음이 아니라 물증의 싸움이다. 다윗이 '위대한 왕'이었다면, 그에 걸맞은 관청이나 성벽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원전 10세기의 지층은 침묵했다.
키르벳 케이야파는 이 침묵을 깼다.
- 위치: 블레셋의 거점 가드(Gath, 텔 에스-사피)와 유다 산지 사이의 국경 지대.
- 전략적 의미: 엘라 골짜기는 해안 평야에서 예루살렘으로 진입하는 핵심 루트다. 이곳에 알박기를 했다는 건, 블레셋을 견제할 강력한 군사력이 있었다는 뜻이다.
2. 결정적 증거: 탄소 연대 측정과 성벽 시스템
이 유적의 발굴 책임자 요세프 가핑켈(Yosef Garfinkel) 교수는 올리브 씨앗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이 도시가 기원전 1020년~980년 사이에 존재했음을 입증했다. 정확히 다윗 통치기와 겹친다.
중앙 집권의 증거: 포대 성벽(Casemate Wall)
단순한 돌무더기가 아니다. 이곳에는 이중 벽으로 이루어진 포대 성벽(Casemate Wall)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
성벽에 맞대어 주거지가 건설된 계획도시 형태다. 이는 개별 부족이나 마을 단위에서는 불가능한 공사다. 중앙 정부가 설계도면을 그리고, 인력을 동원하고, 보급품을 댔다는 강력한 증거다. 즉, 다윗은 하프나 뜯던 시인이 아니라, 토목 공사를 발주할 결재권자였다는 소리다.
[참고 글: 고대 이스라엘의 성벽 건축 기술과 방어 전략]
3. 식탁의 고고학: 돼지 뼈가 말해주는 국경선
유적이 발견되었을 때 가장 큰 질문은 "누가 살았는가?"였다. 블레셋 사람인가, 가나안 사람인가, 아니면 유다 사람인가? 답은 쓰레기통에서 나왔다.
돼지 뼈의 부재 (Absence of Pig Bones)
인근 블레셋 도시(가드, 에그론)의 지층에서는 돼지 뼈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키르벳 케이야파에서는 수천 개의 동물 뼈 중 돼지 뼈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인사이트:
이는 율법적 식습관(코셔)이 이미 이 시기에 지켜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우상 숭배용 조각상(사람이나 동물 형상)이 발견되지 않은 점도 이곳이 '유다 왕국'의 거점임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케이야파 오스트라콘 (Ostracon)
이곳에서 발견된 깨진 토기 조각(오스트라콘)에는 5줄의 글자가 적혀 있었다. '왕', '심판', '과부', '고아' 등의 단어가 판독되었다. 이는 당시 유다에 문자 해독 능력(Literacy)을 갖춘 서기관 계급과 행정 시스템이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4. 두 개의 성문: 이곳이 성경의 '사아라임'인가?
고대 도시에서 성문은 방어의 취약점이기 때문에 보통 하나만 만든다. 그런데 키르벳 케이야파는 특이하게도 두 개의 성문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어로 '문'은 '샤아르(Sha'ar)'다. 여기에 쌍수 어미 '-ayim'을 붙이면 '사아라임(Sha'arayim)', 즉 '두 개의 문'이라는 지명이 된다.
성경 여호수아 15:36과 사무엘상 17:52은 '사아라임'을 언급한다. 특히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후 블레셋 군대가 도망친 경로에 사아라임이 등장한다. 지리적 위치, 시기, 그리고 '두 개의 문'이라는 희귀한 특징까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5. 결론 및 요약
키르벳 케이야파 발굴은 성경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려는 시도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 국가의 실체: 다윗 시대(BC 10세기)에 이미 계획된 요새 도시를 건설할 중앙 집권력이 유다에 존재했다.
- 문화적 정체성: 돼지 뼈의 부재와 문자 사용은 이곳 거주민이 블레셋과 구별되는 이스라엘(유다) 사람이었음을 보여준다.
- 성경 지명 확인: 두 개의 성문은 이곳이 성경 속 도시 '사아라임'일 가능성을 매우 높여준다.
다윗을 전설 속 영웅으로만 치부하기엔, 그가 남긴 돌벽이 너무 높고 단단하다. 키르벳 케이야파는 다윗 왕조가 칼로 정복하고 행정으로 다스린 '국가'였음을 웅변하고 있다.
참고문헌 (References)
* Garfinkel, Y., & Ganor, S. (2009). Khirbet Qeiyafa Vol. 1: Excavation Report 2007–2008. Israel Exploration Society.
* Garfinkel, Y. (2011). "The Birth & Death of Biblical Minimalism." Biblical Archaeology Review.
* Kang, H. (2014). "The Khirbet Qeiyafa Ostracon: A Re-evalu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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