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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고고학

"미싱 링크"의 정체: 라키스 발견이 정말 모세 기록의 증거인가?

라키스(Lachish) '미싱 링크' 문자의 진실: 모세 시대 기록 가능성 재검토

"미싱 링크"의 정체: 라키스 발견이 정말 모세 기록의 증거인가?

2021년 학계를 뒤흔든 라키스(Lachish) 알파벳 발견. "모세 시대에 기록이 가능했다"는 주장의 결정적 증거일까? 팩트와 해석 사이의 간격을 파고들어, 고고학적 진실과 종교적 희망을 구분해보자.

사실: 라키스 발견은 뭔가?

2018년 오스트리아 고고학 연구소와 히브리 대학 팀이 텔 라키스(Tel Lachish)에서 발굴한 도자기 파편은 진짜 중요한 발견이다. 기원전 1450년경으로 방사선탄소 연대측정된 이 작은 조각(약 4×3.5cm)에는 6~8개 정도의 알파벳 문자가 잉크로 새겨져 있다.

내용은 불명확하지만 아마도 누군가의 이름과 "꿀" 또는 "향료" 같은 단어로 추정된다. 문제는 무엇이 "미싱 링크"인지에 대한 오해가 깊다는 것이다.

미싱 링크의 정확한 의미

1850~1700 BC경 시나이의 세라빗 엘카디에서 발견된 Proto-Sinaitic 비문들(약 30~40개)은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파생된 초기 알파벳 시스템을 보여준다. 반면 기원전 14~13세기 레반트의 비문들은 훨씬 발달된 형태다.

사이의 약 500년 동안 증거가 거의 없었다. 라키스 발견은 이 갭을 직선적으로 메운 것이 아니라, 중간 지점의 증거를 하나 제시한 것이다.

  • Proto-Sinaitic (초기 알파벳, 1850-1700 BC)
  • Lachish (중간 단계, 1450 BC) ← 여기가 "미싱 링크"
  • Levant 광범위 사용 (14-13세기 BC)

이것은 알파벳이 이집트에서 발명된 후 천천히 가나안으로 확산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지리적·시간적 증거다.

사용자 주장의 문제점 ①: "이집트 상형문자가 알파벳으로 변해가는 과정"

이건 역사적 오독이다. Proto-Sinaitic 비문들은 이미 완성된 알파벳이지, 상형문자에서 알파벳으로 "변환 중인" 과정이 아니다. 라키스 비문도 마찬가지로 이미 알파벳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오히려 보여주는 것은:

"이미 알파벳인 시스템이 이집트(Sinai)에서 시작해 점차 Levant로 확산되고 있는 과정"

상형문자에서 알파벳으로의 근본적 혁신은 Proto-Sinaitic 단계(1800년대 BC)에서 일어났고, 라키스는 그 이후의 지역적 전파 단계를 보여줄 뿐이다.

사용자 주장의 문제점 ②: "모세 시대에 기록이 가능했나?"

더 까다로운 부분이다.

기술적 가능성: 1450 BC 라키스 발견은 확실히 "알파벳 기록이 기술적으로 가능했음"을 증명한다. 이제 "모세가 살았던 시대에 기록 도구가 없었다"는 반박은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1. 모세의 역사성: 주류 학자 90% 이상은 모세를 "전설적 인물(legendary figure)"로 본다. 라키스 발견이 이를 바꾸지 못한다.
  2. 기록 문화의 광범위한 채택: 알파벳이 존재하는 것과 대중적 문해 문화가 정착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고대 근동에서 문해력은 보통 전체 인구의 1% 미만의 엘리트(행정가, 제사장, 상인)에게만 있었다. 광범위한 기록 문화는 철기시대 이후에나 일반화된다.
  3. 모세의 문해력: Exodus 본문 자체가 모세의 "글쓰기"를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당시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학자들은 뭐라고 하나?

라키스 발견을 주도한 Felix Höflmayer는 명확히 말한다:

"The proliferation of the early alphabet to the southern Levant was usually dated to the 14th or 13th century BC and was seen as a by-product of the Egyptian domination of the region during that time. However, this sherd shows it was introduced independently and earlier."

즉, 알파벳 전파의 시기와 경로에 대한 이해를 조정하는 발견이지, "모세 시대 기록 문화"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 "가능했다" ≠ "했다"

여기가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당신의 논리는:

  1. 라키스에서 1450 BC 알파벳 증거 발견 ✓
  2. 따라서 모세 시대에 기록이 기술적으로 가능했음 ✓
  3. 따라서 모세가 토라를 기록했을 수 있다 ✗ (비약)

기술적 가능성(capability)과 역사적 사실(fact)은 다르다. 1450 BC에 비행기가 있었다면 모세가 비행기를 탈 수 있었을 텐데, 비행기가 없었다고 해서 1000년 뒤 아브라함도 비행기를 탈 수 없었던 건 아니다—그냥 없었을 뿐이다.

나만의 에세이: 고고학은 믿음의 보증수표가 아니다

나는 라키스 발견이 흥미롭다. 정말로. 하지만 이 발견을 보면서 떠오르는 건 "아, 이제 모세가 글을 썼다는 증거가 나왔구나"가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나 간절히 고고학에게 믿음의 정당성을 구걸하는가"다.

고고학의 임무는 과거의 물질 문화를 복원하는 것이지, 종교 텍스트를 검증하는 것이 아니다. 라키스 파편은 1450년에 누군가가 알파벳으로 뭔가를 적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게 전부다. 그 "누군가"가 모세인지, 가나안 상인인지, 이집트 행정가인지는 알 수 없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것이다: 만약 라키스 발견이 없었다면, 모세의 기록 행위를 믿지 않을 것인가? 만약 답이 "아니오"라면, 굳이 고고학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답이 "예"라면, 당신의 믿음은 고고학 스케줄에 의존하는 불안정한 것이다.

고고학적 발견은 계속된다. 어떤 건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어떤 건 산산조각 낸다. 라키스는 알파벳 전파의 중간 고리를 보여줬지만, 동시에 "초기 알파벳 사용자는 극소수 엘리트"였다는 사실도 재확인시켰다. 이 역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나?

참고문헌

Höflmayer, F., Misgav, H., Webster, L., & Streit, K. (2021). "Early alphabetic writing in the ancient Near East: the 'missing link' from Tel Lachish." Antiquity, 95(381), 705-719. Cambridge University Press.

Garfinkel, Y., & Golub, M. R. (2015). "The Lachish Jar Sherd: An Early Alphabetic Inscription Discovered in 2014." Archaeology at Lachish.

Wimmer, S. J. (2008). "The 'Scribal Turn' from Egyptian Hieratic to the Alphabet." Jerusalem Journal of Archaeology and Religion, 7-8.

Doak, B. R. (2014). "Written with the Finger of God: Divine and Human Writing in the Hebrew Bible and the Ancient Near East." George Fox University Digital Commons.

Rollston, C. A. (2010). Writing and Literacy in the World of Ancient Israel: Epigraphic Evidence from the Iron Age.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Sass, B. (1988). The Genesis of the Alphabet and Its Development in the Second Millennium B.C. Ägypten und Altes Testament.

Howard, B. R. (2013). "Exodus and the Authority of the Written Word." Word & World, 33(2).

Austrian Academy of Sciences. (2021). "'Missing link' in alphabet history discovered." Press Release, April 14,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