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고고학/고고학적 증거와 논쟁

"다윗은 유니콘 같은 존재가 아니다." 1993년, 돌덩이 하나가 성서 최소주의 학자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습니다.

scripture 2025. 12. 10. 23:12

 

 

 

텔단 비문, 다윗은 신화인가? '다윗의 집' 실존 논쟁의 종지부

성경을 읽다 보면 다윗 왕이 대단한 정복 군주로 나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주류 학계의 일부, 특히 유럽의 '성서 최소주의자(Minimalists)'들은 코웃음을 쳤습니다.

"다윗? 아서 왕 같은 전설이지. 고고학적 증거가 전무하잖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때까진 다윗의 이름이 적힌 고대 문서나 비석이 단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학자들은 침묵했고, 회의론은 득세했습니다. 그런데 이 판을 엎어버린 건, 아주 우연한 발견이었습니다.

1. 1993년 텔단, 역사가 뒤집히다

이스라엘 북단, 텔 단(Tel Dan). 성경에서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라고 할 때 그 '단'입니다.

히브리 유니온 칼리지의 아브라함 비란(Avraham Biran) 교수가 이끄는 발굴팀은 이곳에서 성문 광장을 발굴 중이었습니다. 땡볕 아래 흙먼지 뒤집어쓰고 일하던 중, 측량 기사 길라 쿡(Gila Cook)이 돌담 사이에 끼어 있는 검은 현무암 조각을 발견합니다.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비치자, 돌 표면에 아람어 글자들이 드러났습니다. 고대인들은 종종 이전 시대의 기념비를 부숴서 건축 자재로 재활용하곤 했는데, 이것도 그런 '재활용품' 중 하나였습니다.

텔단 비문 조각 A와 B. 검은 현무암 위에 새겨진 고대 아람어는 역사를 다시 썼다.
팩트 체크(Fact Check):
  • 발견 시기: 1993년 7월 21일 (조각 A), 1994년 6월 20일 (조각 B1, B2)
  • 재질: 현무암 (Basalt)
  • 언어: 고대 아람어 (Old Aramaic), 기원전 9세기 후반 추정

BYTDWD 표기된 텔단 비문 그림

2. 핵심 쟁점: 'BYTDWD'의 해석 전쟁

이 비문(KAI 310)이 학계를 강타한 이유는 딱 한 단어 때문입니다. 9번째 줄에 선명하게 적힌 여섯 글자.

bytdwd (ביתדוד)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자음만 표기합니다. 이 글자를 두고 학자들은 문자 그대로 '피 터지는'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왜냐고요? 고대 비문에는 단어 사이에 점(Word Divider)을 찍어 구분하는데, 이 단어에는 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류 학설 (Maximalists & Majority)

안손 레이니(Anson Rainey)나 안드레 르메르(André Lemaire) 같은 학자들은 명쾌합니다.

  • 해석: "다윗의 집(House of David)"
  • 논리: 고대 근동에서 왕조나 국가를 지칭할 때 '설립자의 집(House of X)'이라는 표현을 쓴다. (예: 북이스라엘을 '옴리의 집'이라 부른 앗수르 기록).
  • 분리 기호 부재 이유: 고유명사나 이미 굳어진 지명/국가명은 한 단어처럼 취급해 점을 생략하는 경우가 흔하다.

최소주의자들의 반격 (Minimalists)

필립 데이비스(Philip Davies)나 토마스 톰슨(Thomas Thompson) 같은 학자들은 다윗의 실존을 인정하기 싫어 필사적으로 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 가설 1: 'Byt' (집) + 'Dwd' (삼촌/사랑하는 자). 즉 "삼촌의 집" 혹은 "사랑받는 자의 집"이라는 뜻이다.
  • 가설 2: '아스돗(Ashdod)' 같은 지명일 뿐이다.
  • 가설 3: 다윗은 신화적 인물이고, 이 비문은 위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 논쟁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앙드레 르메르가 메사 비문(Mesha Stele) 31행에서도 '다윗의 집'으로 추정되는 글자를 복원해냈고, 학계의 중론은 "이것은 남유다 왕국을 지칭하는 '다윗의 집'이 맞다"로 굳어졌습니다. 다윗은 신화가 아니라, 주변국 왕들이 인지하던 강력한 왕조의 시조였던 겁니다.

3. 누가, 왜 썼는가? 아람 왕 하사엘의 선전포고

그렇다면 이 돌덩이는 누가 만들었을까요? 비문의 내용은 "내가 이스라엘 왕 OOO와 다윗의 집 왕 OOO를 죽였다"는 승전보입니다.

고고학적 층위와 서체학적 분석을 종합할 때, 이 비문의 주인공은 다마스쿠스의 아람 왕 하사엘(Hazael)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기원전 9세기, 아람(다마스쿠스)의 팽창과 이스라엘-유다의 대립 구도.

비문에서 복원된 왕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이스라엘 왕: [요]람 ([Jeho]ram) - 아합의 아들
  • 다윗의 집(유다) 왕: [아하시]야 ([Ahaz]iahu) - 요람의 조카

즉, 아람 왕 하사엘이 텔 단을 점령한 뒤, "내가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다윗의 집)을 박살 냈다"라고 자랑하며 세운 승전비입니다. 정치인이 자기 업적 부풀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4. 성경 기록과의 충돌과 조화

여기서 우리는 냉정하게 성경 텍스트와 비교해봐야 합니다. 성경(열왕기하 9장)과 텔단 비문은 묘하게 엇갈립니다.

  • 성경(왕하 9장): 예후(Jehu)가 쿠데타를 일으켜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를 죽였다.
  • 텔단 비문: 아람 왕(하사엘)이 두 왕을 죽였다고 주장한다.

누구 말이 맞을까요? 고대 근동 역사에서 왕들은 종종 자신의 개입으로 일어난 적국의 혼란을 "내가 죽였다"고 과장하곤 했습니다.

학계의 합리적 추론은 이렇습니다. 하사엘과의 전쟁에서 두 왕이 치명타를 입어 전력이 약화되었고(전투 중 부상), 그 틈을 타 예후가 쿠데타로 막타를 쳤을 것입니다. 하사엘 입장에선 "내가 다 판을 깔아줬으니 내가 죽인 셈"이라고 숟가락을 얹은 것이죠.

중요한 건,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과 사건의 배경이 고고학적 유물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점입니다.

5. 결론: 다윗은 '제국'의 이름이었다

텔단 비문은 다윗이 골리앗을 돌로 때려잡았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개인사는 고고학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비문은 더 중요한 사실을 말해줍니다.

"다윗은 기원전 9세기 적국 왕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남유다 왕조의 확고한 시조(Founder)였다."

미니멀리스트들의 주장처럼 다윗이 헬레니즘 시대에 창작된 소설 속 인물이라면, 기원전 9세기 아람 왕이 굳이 없는 왕조의 이름을 비석에 새겨넣을 이유가 없습니다. 유령의 명함을 파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이 돌조각 하나로 다윗은 신화의 안개에서 걸어 나와, 흙먼지 날리는 역사의 현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마무리 인사이트

성경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도 위험하지만, 증거가 없다고 무조건 의심하는 것도 비과학적입니다. 텔단 비문은 그 균형을 잡아주는 아주 묵직한 돌덩이입니다. 여러분이 밟고 있는 그 땅 밑에, 아직 우리가 모르는 역사의 퍼즐 조각이 잠자고 있을지 모릅니다.

다른 글에서는 이스라엘 왕 '오므리'가 다른 비문에서 어떻게 묘사되는지, '메사 비문'을 통해 모압의 관점으로 뒤집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