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보자. 성경은 이스라엘의 승리를 기록하지만, 땅속에서 나온 돌판은 이스라엘의 처참한 패배를 증언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지만, 유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목차
1. 발견: 깨진 돌판이 던진 충격
1868년, 요르단 디본(Dibon). 독일 선교사 클라인(F. A. Klein)은 베두인들로부터 검은 현무암 비석 하나를 발견한다. 높이 1미터 남짓한 이 돌덩어리는 단순한 돌이 아니었다.
이 비석을 차지하려는 서구 열강(프랑스, 독일, 영국)의 암투 속에, 베두인들은 비석을 불에 달군 뒤 찬물을 부어 산산조각 내버렸다. "우리가 못 가질 바엔 부숴버리겠다"는 심산이었다. 다행히 사전에 떠둔 탁본(Squeezes) 덕분에 프랑스 학자 클레르몽-가노가 내용을 복원할 수 있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기원전 9세기, 모압 왕 메샤(Mesha)가 이스라엘의 압제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했다는 승전보였다. 이는 성경 밖에서 '이스라엘(Israel)'이라는 국명과 '옴리(Omri)' 왕조의 이름이 확인된 최초의 사례였다.

2. 팩트 체크: 열왕기하 vs 메샤 비문 교차 검증
여기서 흥미로운 모순이 발생한다. 같은 전쟁(모압의 반란)을 두고 성경(열왕기하 3장)과 메샤 석비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비교해 보자.
성경의 주장 (열왕기하 3장)
- 모압 왕 메샤가 배신하자 이스라엘(여호람), 유다(여호사밧), 에돔 연합군이 공격했다.
- 연합군은 파죽지세로 모압을 밀어붙였고, 메샤는 궁지에 몰려 성 위에서 맏아들을 번제로 바쳤다.
- 결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자국으로 돌아갔더라"(왕하 3:27). 패배라기보다는 찜찜한 철수로 묘사한다.
메샤 석비의 주장 (고고학적 증거)
"이스라엘의 왕 옴리가 오랫동안 모압을 억압했다... 그의 아들(아합 혹은 여호람)도 '내가 모압을 억압하리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와 그의 집이 패배하는 것을 보았다. 이스라엘은 영원히 멸망했다."
메샤는 자신의 신 '그모스(Chemosh)'가 모압에 진노하여 잠시 이스라엘의 지배를 허락했으나, 이제 그모스가 돌아와 이스라엘을 몰아냈다고 기록한다. 성경이 '격노가 임해 철수했다'고 모호하게 적은 부분은, 사실 모압의 강력한 반격과 인신공양(맏아들 번제)이 준 심리적 공포로 인한 이스라엘 연합군의 패주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유물 탐구] 몰렉 숭배와 인신공양의 실체, 고대 근동의 잔혹사
3. 논쟁: '다윗의 집'은 실존했는가?
메샤 석비는 단순히 전쟁 기록에 그치지 않는다. 1994년, 프랑스의 서예학자 앙드레 르메르(André Lemaire)는 비문의 31번째 줄에서 결정적인 단어를 해독해 냈다.
바로 'BT DWD(베이트 다비드)', 즉 '다윗의 집(House of David)'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1990년대 이전까지 소위 '성서 최소주의자(Minimalists)'들은 다윗과 솔로몬을 영국의 아서 왕 같은 전설 속 인물로 취급했다. 증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샤 석비(와 텔 단 석비)는 기원전 9세기의 적국(모압) 왕이 유다 왕국을 '다윗의 왕조'라고 불렀음을 증명했다.
물론 학계의 논쟁은 여전하다. 일부 학자들은 해당 글자가 손상되어 '다윗'으로 읽기 어렵다고 반박한다(예: 발락의 집, 혹은 다른 지명). 그러나 주류 학설은 텔 단 석비의 발견 이후, 메샤 비문의 'BT DWD' 역시 다윗 왕조를 지칭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메샤 석비(Mesha Stele). 검은 현무암에 새겨진 역사는 성경의 빈틈을 메운다.
4. 마무리: 신학적 편향을 넘어선 역사 읽기
성경은 종교적 목적을 가진 경전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패배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메샤는 자신의 업적을 과시해야 했다.
우리는 두 기록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1) 옴리 왕조는 강력했다. 모압 왕이 "옴리가 우리를 억압했다"고 기록할 정도로 북이스라엘의 국력은 막강했다.
2) 전쟁의 결과는 이스라엘의 패배였다. 성경의 '철수'는 패배의 완곡한 표현이다.
3) 고고학은 퍼즐 조각이다. 깨진 돌판 하나가 전설로 치부되던 '다윗'을 역사로 끌어올렸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지만, 역사는 보이는 증거로 말한다. 메샤 석비는 성경이 숨기고 싶었던 부끄러운 역사를 드러냄과 동시에, 성경 속 인물들이 허구가 아님을 증명하는 역설적인 유물이다.
💡 인사이트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것과 역사적 맥락을 아는 것은 다릅니다. 메샤 석비는 당시 국가 간의 전쟁이 곧 '신들의 전쟁'(야훼 vs 그모스)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구약의 잔혹한 전쟁 기사가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다윗 왕조의 실존을 증명하는 또 다른 결정적 증거, '텔 단 석비'에 대해 파헤쳐 보겠습니다. 아래 추천 글을 통해 고대 근동의 종교관을 더 깊이 이해해 보세요.
"다윗은 전설 속 인물인가?" 텔 단 석비(Tel Dan Stele)가 발견되기 전까지 학계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 판도를 뒤집은 1993년의 발굴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성경 고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삭은 정말 예루살렘을 털었나? 부바스 티스 포털의 침묵 (1) | 2025.12.17 |
|---|---|
| [발굴 리포트] 키르벳 케이야파: 다윗은 '신화'가 아니라 '행정가'였다 (1) | 2025.12.16 |
| 출애굽기 노예 명부 발견? 브루클린 파피루스 35.1446의 진실 (1) | 2025.12.13 |
| 에발산 저주 서판: 성경 고고학의 '성배'인가, 희대의 '착시'인가? (0) | 2025.12.13 |
| 메르넵타 비문: 이집트 파라오는 왜 이스라엘의 '씨'를 말렸다고 뻥을 쳤나? (0) | 2025.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