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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고고학

📝 빌라도 비문: 성경을 소설 취급하던 이들에게 날린 묵직한 돌직구

나사렛 비문의 진실: 황제의 경고가 예수를 겨냥했다는 가설은 왜 무너졌나

1961년 이전까지 본디오 빌라도는 '유령'이었습니다. 성경과 몇몇 고문서에만 존재하는 문학적 장치라는 비아냥을 들었죠. 하지만 가이사랴의 흙더미 속에서 발견된 돌덩이 하나가 모든 논쟁을 끝냈습니다. 이 돌은 말합니다. "팩트 앞에선 겸손해라."

1. 의심의 시대: 빌라도는 허구의 인물인가?

오랫동안 회의론자들에게 본디오 빌라도(Pontius Pilate)는 맛 좋은 먹잇감이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심플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그 꼼꼼한 행정 문서에 왜 유대 총독의 이름이 없는가?"

물론 요세푸스나 필로 같은 유대 역사가들의 기록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이를 '유대인들끼리의 입맞춤' 정도로 치부했죠. 로마 측의 1차 사료, 즉 '물증'이 없다는 게 그들의 주무기였습니다.

성경 속 인물이 역사적 실체가 없는 신화적 존재라면, 기독교의 근간은 흔들립니다. 빌라도가 없으면 재판도 없고, 십자가도 없기 때문입니다. 1960년까지 학계의 분위기는 꽤나 냉소적이었습니다.

빌라도 비문을 통해 밝혀진 역사적 사실

2. 1961년 가이사랴: 계단으로 쓰이던 역사의 증거

반전은 엉뚱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이탈리아 고고학자 안토니오 프로바(Antonio Frova)가 이끄는 발굴팀이 이스라엘 가이사랴(Caesarea Maritima)의 로마 원형극장을 조사하던 중이었습니다.

극장 계단으로 재활용된 석회암 블록 하나를 뒤집어 보니, 거기에 라틴어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밟고 다니던 돌이 알고 보니 1세기 역사의 잃어버린 퍼즐 조각이었던 겁니다. 참으로 얄궂은 역사의 아이러니 아닙니까?

가로 82cm, 세로 65cm의 이 손상된 석회암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가 선명히 남아 있었습니다.

  • [...]S TIBERIEVM (티베리이움을...)
  • [...PO]NTIUS PILATUS (...본디오 빌라도가)
  • [...PRAEF]ECTUS IUDA[EA]E (유대 총독이...)

3. 비문 해독: 총독(Praefectus)인가 행정관(Procurator)인가?

이 비문이 중요한 건 단순히 이름이 나왔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바로 직함 때문입니다. 발견 전까지 학자들은 빌라도의 직함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습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그의 저서 《연대기》에서 빌라도를 '프로쿠라토르(Procurator, 행정관/재무관)'라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이 비문에는 명확하게 '프라이펙투스(Praefectus, 총독/장관)'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할까요? '프라이펙투스'는 군사 지휘권까지 가진 막강한 자리입니다. 반면 '프로쿠라토르'는 주로 재정을 담당하는 관리죠. 비문은 빌라도가 단순한 행정가가 아니라, 군대를 움직여 예수를 처형할 권한이 있는 군사 총독이었음을 증명합니다.

4. 팩트체크: 왜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틀렸나

여기서 우리는 고고학이 문헌보다 강력할 수 있음을 봅니다. 타키투스는 1세기 후반~2세기 초의 인물입니다. 그가 글을 쓸 당시인 클라우디우스 황제 이후부터 유대 지역 관리자의 직함이 '프라이펙투스'에서 '프로쿠라토르'로 바뀌었습니다.

즉, 타키투스는 자신의 시대에 익숙한 직함을 과거의 인물인 빌라도에게 소급 적용하는 오류(Anachronism)를 범한 것입니다. 반면, 빌라도가 직접 새긴 이 돌은 당시의 상황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동시대의 증언'입니다.

 

결국 성경이 말하는 '총독 빌라도'의 지위는 역사적으로 정확했습니다. 돌 하나가 로마 최고의 역사가보다 더 정확한 팩트를 전달한 셈입니다.

🗿 에세이: 돌은 기억하고 인간은 망각한다

본디오 빌라도는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책임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역사에서 '악역'으로 남기를 거부했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거대한 건축물(티베리이움)을 짓고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는 '성공한 관료'로서의 삶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역사의 처분은 냉혹합니다. 그가 황제에게 아부하기 위해 만든 그 비석은, 훗날 누군가의 엉덩이를 받치는 극장 계단으로 전락했습니다. 짓밟히고 닳아빠진 그 돌이 2천 년 뒤에 드러나, 그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재판의 책임자'로서의 실존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진실은 덮으려 한다고 덮어지지 않습니다. 빌라도는 손을 씻었지만, 역사는 그의 이름을 돌에 새겨 박제해 버렸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무심코 내뱉는 말과 행동도 언젠가 흙더미 속에서 발견될지 모릅니다. 당신의 삶은 어떤 비문으로 남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