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1990년의 우연한 발견: 평화숲 발굴
1990년 11월, 예루살렘 구시가지 남쪽 평화숲(Peace Forest) 지역에서 도로 확장 공사를 진행하던 건설 인부들이 돌연 고대 무덤 동굴의 천장을 뚫었다. 현장에 출동한 이스라엘 고고학청(IAA)의 발굴팀장 즈비 그린후트(Zvi Greenhut)는 즉시 이 지역이 제2성전 시기(기원전 30년~기원후 70년)의 대규모 유골함 매장지임을 파악했다.
발굴 팀은 4개의 ' 코크(kokh)'라 불리는 바위에 깎은 벽감(壁龕, 약 6피트 깊이, 18인치 폭)을 확인했다. 건설 인부들이 이미 4개의 유골함을 꺼내 갔고, 6개는 고대 도굴꾼들에 의해 파괴되어 산재해 있었다. 그러나 코크 IV의 한 벽감 안에는 약 2천년 전 원래 자리 그대로 안치되어 있던 2개의 완전한 유골함이 발견되었다.

유골함의 형태, 장식, 명문 분석
발견된 12개 중 5개의 유골함은 명문(銘文, inscription)을 지니고 있었다. 그중 가장 화려한 유골함은 암회색의 석회석으로 제작되었으며, 길이 약 75센티미터, 높이 약 37센티미터의 크기였다. 뚜껑에는 정교한 로제트(rosette) 장식이 두 개 새겨졌고, 몸체에는 기하학적 무늬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었다.
이 유골함의 옆면과 좁은 끝부분에는 아람어(Aramaic)로 "Yehosef bar Qayafa" (예호세프 바르 까야파, 즉 "가야바의 아들 요셉")라는 명문이 두 번 나타난다. 명문의 글씨는 서툰 손으로, 아마 가족 중 한 사람이 뼈를 수습한 뒤 내용물을 식별하기 위해 긁어 새긴 것으로 보인다. 문자의 크기와 깊이가 불규칙한 것은 '비전문적' 새김을 보여주는데, 이는 오히려 '진정성'의 증거가 된다. 전문가가 위조한다면 더 정돈된 글씨를 남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고학적 진정성: 문헌학·화학·인류학 검증
문헌학적 검증(Paleographic Analysis)
이스라엘 고고학청의 문헌학자들, 특히 르모니 라흐마니(L.Y. Rahmani)와 레아 디 세니(Leah Di Segni)는 명문의 서체를 기원후 1세기 초의 특징과 비교 분석했다. 아람어 문자의 획(stroke), 자형(letter form), 그리고 각 글자 사이의 공간감이 모두 제2성전 시기의 표준과 일치했다. 혼동의 여지가 없는 1세기 원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Flavius Josephus)의 기록에도 이 시기 대제사장의 이름이 "까야파라고 불린 요셉(Joseph who was called Caiaphas)"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유골함의 명문은 요세푸스의 기록과 정확히 부합한다.
화학적 검증: 패티나(Patina) 분석
유골함의 '진정성'을 가장 확실히 증명하는 증거는 바로 패티나(patina)—즉, 석회석 표면 위에 수세기에 걸쳐 형성된 얇은 광물층이다. 명문이 새겨진 부분까지 일관되게 형성된 패티나는 현대 도구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다.
이스라엘 지질학 조사단(Geological Survey of Israel)의 분석 결과, 유골함의 패티나에는 칼사이트(calcite), 석영(quartz), 그리고 생물기원 미네랄인 휘렐라이트(whewellite)와 웨덱라이트(weddelite, 옥살산 칼슘)가 확인되었다. 이 미네랄들은 미생물 활동으로만 형성될 수 있으며,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명문의 글자 홈 깊숙한 부분까지 패티나가 고르게 침투해 있으며, 현대의 절삭 도구 흔적이 전혀 없었다.
인류학적 검증: 유골 분석
이 유골함에는 6명의 유골이 들어있었다: 2명의 유아, 2~5세 어린이 1명, 13~18세 소년 1명, 성인 여성 1명, 그리고 약 60세의 성인 남성 1명. 인류학적 분석에 따르면 이 60세 남성이 가장 고령이며, 가족 무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여겨졌을 것이다. 1세기 당시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60세는 상당한 고령이었으며, 이는 '주요 인물'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유골함의 화려한 장식과 위치(맨 먼저 배치된 위치)는 이 인물이 가족 계보의 중심인물이었음을 시사한다.
1세기 유대 귀족의 매장 풍습과 제2성전 시기의 맥락
2단계 매장 제도(Two-Stage Burial)
제2성전 시기 유대 귀족 사이에서는 2단계 매장 제도가 관례였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시신을 무덤의 바위 깎은 벽감(loculus) 또는 선반에 1년 정도 안치했다. 이 기간 동안 신체는 자연 부패로 분해되었다. 1년 후 가족들은 무덤을 다시 방문하여 뼈만 수집하고 석회석 유골함(ossuary)에 담았다. 이 유골함은 다시 무덤의 더 작은 벽감(kokh)에 보관되었다. 때로는 여러 가족 구성원의 뼈를 한 유골함에 담기도 했다.
유골함의 등장과 사회적 의미
유골함 문화는 예루살렘에서만 유대인들 사이에서 발생했으며, 제2성전 멸망(70 CE) 직전까지만 지속되었다. 이는 독특한 유대인 정체성의 표현이자, 동시에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다. 유골함을 소유하고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다는 것은 경제력과 신분을 드러냈다.
가야바 유골함이 발견된 평화숲 지역은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예루살렘의 대규모 유골함 매장지(necropolis)였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다른 무덤들도 제사장 계급과 성전 귀족층의 것으로 추정된다. 즉, 가야바 유골함은 단순한 '개인 무덤'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종교 권력층이 선호하던 특정 지역의 고급 장례 문화를 대표한다.
제2성전 시기의 종교적·정치적 배경
가야바가 살았던 1세기는 로마의 야무니아 점령(기원후 63년)부터 제2차 유대 반란(기원후 66~70년)에 이르는 극도로 긴장된 시대였다. 대제사장은 로마 총독과 유대 공의회(산헤드린)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했으며, 정치적으로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가야바는 이 직책을 대략 18년(기원후 18~36년경)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화려한 유골함의 발견은 대제사장 가야바가 1세기 예루살렘의 최상층 귀족임을 재확인해준다. 그의 무덤은 단순한 매장지가 아니라 가족 전체의 영구적 매장소(family sepulcher)였으며, 여러 세대에 걸쳐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가야바 확정의 문제: 누구의 유골함인가?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이 유골함이 과연 신약의 '그' 가야바의 것인가?" 학자들 사이에서는 몇 가지 가능성을 놓고 논쟁한다.
첫째, 이것은 신약에 등장하는 예수를 심문한 그 대제사장 가야바(기원후 18~36년경 재직)의 직접적인 유골함일 가능성이다. 60세 남성의 유골이 발견된 점, 그리고 명문 "가야바의 아들 요셉"이라는 기록을 고려하면, 이 인물은 가야바의 아들 또는 손자일 수도 있다. 아람어에서 "bar" (아들)는 "~의 가족 일원"이라는 광의적 의미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까야파라고 불린 요셉"은 1세기 초중반의 인물이다. 그런데 유골함에서 발견된 60세 남성 유골이 정확히 그 시대의 것인지, 아니면 그의 손자나 증손자(역시 같은 이름을 물려받았을 것)인지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이 불가능했다. 유골함 내부에는 유기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합의점은 "이 무덤은 확실히 고위급 사제 가계의 것이며, 가야바 가문과 강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히 신약에 등장하는 예수 재판의 그 대제사장인지"는 100% 확정되지 않았다.
학계의 입장과 남은 의문점
학계의 광범위한 수용
이스라엘 고고학청, 텔아비브 대학교, 예루살렘 대학교 등 주요 학술 기관은 이 유골함의 진정성을 인정하고 있다. 국제학술지 Biblical Archaeology Review에 실린 발굴 보고서도 유골함을 1세기 원본으로 분류했다. 영문 위키피디아, 학술 데이터베이스, 주요 기독교 학문 기관들이 모두 이 유골함을 신뢰할 만한 고고학적 증거로 취급한다.
회의론자들의 지적사항
소수의 학자들은 다음 점들을 지적한다:
- 계보의 불확실성: 명문에 "가야바의 아들"이라고만 기록되었으므로, 신약의 대제사장 가야바 자신이 아닐 수도 있다. 같은 이름이 여러 세대에 걸쳐 물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 원위치(provenance) 문제: 최초 발견 당시 고고학적 문서화가 완벽하지 않았으므로, 일부는 추가 검증을 요구한다. 다만 건설 인부의 증언과 IAA의 체계적 발굴로 이 점은 상당히 보완되었다.
- 탄소연대측정 불가: 유기물 부족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이 불가능했다는 점은 절대연대 확정의 한계를 남긴다. 다만 부장품(동전, 도자기, 유리 그릇)의 날짜 추정으로 1세기로 확실히 분류되었다.
나만의 통찰: 역사적 사실과 종교적 신앙의 경계
📌 고고학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가야바 유골함은 역사적 신뢰성에 있어서 탁월하다. 물리적 증거, 화학 분석, 문헌학적 검증이 모두 일관되게 "1세기 유대 귀족의 진정한 매장품"임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학계의 수용은 정당하다.
그러나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점이 있다: 고고학이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유골함이 신약의 대제사장 가야바 그 자신인지, 아니면 그의 후손인지는 순전히 이름 기반의 추론일 뿐이다. 1세기 예루살렘에서 "요셉 바 까야파"라는 이름은 희귀했을 테지만, 배제할 수 없다. 역사 추론에서는 항상 '가능성의 계산'이 우선이다.
종교적 믿음과 역사적 사실을 혼동하면 위험하다. 이 유골함이 진정하다는 것 = 신약이 역사적으로 신뢰할 만하다는 것 ≠ 신약이 종교적으로 참이라는 것이다. 세 명제는 서로 다르다. 첫 번째 명제는 고고학이 말할 수 있고, 두 번째는 부분적으로 지지할 수 있지만, 세 번째는 고고학의 범위를 벗어난다.
가야바 유골함의 진가는 "예수의 대제사장을 증명했다"는 데 아니라, "1세기 유대 사회의 물질 문화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줬다"는 데 있다. 화려한 로제트 장식, 비전문적이지만 섬세한 명문, 가족 여러 세대를 함께 매장하는 풍습—이 모든 것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고대 예루살렘의 일상을 드러낸다. 이것이 고고학의 진정한 가치다.
📚 참고문헌 및 출처
Greenhut, Z. (1992). "Burial Cave of the Caiaphas Family."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8(5), 29-36, 76.
Greenhut, Z. (1992). "The 'Caiaphas' Tomb in the North of Jerusalem." 'Atiqot 21, 63-71. Israel Antiquities Authority.
Reich, R. (1992). "Caiaphas Name Inscribed on Bone Boxes."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8(5), 40-44, 76.
Avni, G., & Greenhut, Z. (Eds.). (1996). The Akeldama Tombs: Three Burial Caves in the Kidron Valley, Jerusalem. IAA Report No. 1. Jerusalem: Ahva Press.
Zias, J. (1992). Anthropological Analysis of the Skeletal Remains. In Greenhut, Z., "Burial Cave of the Caiaphas Family,"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8(5), 78-79.
Lemaire, A. (2003). "Burial box of James, the son of Joseph, brother of Yeshua." Archaeological Evidence and paleographic analysis. Royal Ontario Museum technical reports.
Josephus Flavius. Antiquities of the Jews, 18:35, 95. (1세기 유대 역사가의 원전)
Rahmani, L.Y. (1994). A Catalogue of Jewish Ossuaries in the Collections of the State of Israel.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성경 고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십자가 환상을 박살 내다: 못 박힌 발뒤꿈치, 여호하난의 증언 (0) | 2025.12.28 |
|---|---|
| 나사렛 비문의 진실: 황제의 경고가 예수를 겨냥했다는 가설은 왜 무너졌나 (0) | 2025.12.28 |
| 📝 빌라도 비문: 성경을 소설 취급하던 이들에게 날린 묵직한 돌직구 (1) | 2025.12.27 |
| 쿰란 4동굴의 편지 한 통이 폭로한 진실—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부정했고, 광야의 결벽증이 혁명이 되었다 (0) | 2025.12.27 |
| 엘레판티네의 유대인들, 예루살렘 율법을 비웃다—나일 섬에 세워진 '이단' 성전의 비밀 (1) | 2025.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