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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고고학

십자가 환상을 박살 내다: 못 박힌 발뒤꿈치, 여호하난의 증언

나사렛 비문의 진실: 황제의 경고가 예수를 겨냥했다는 가설은 왜 무너졌나

팩트는 잔인합니다. 우리가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보는 '얌전하게 모은 두 발'은 로마의 고문 기술을 너무 낭만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1968년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유일한 십자가 처형의 물증, '여호하난의 뼈'는 훨씬 더 기괴하고, 훨씬 더 고통스러운 자세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 학계의 논쟁은 상상보다 훨씬 더 날카롭습니다.

이 글은 단순히 "성경이 맞다"고 외치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로마 제국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그 차가운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죽음의 기술'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같은 뼈를 보고도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학자들의 '신념의 게임'을 관찰합니다.


목차

  1. 1968년, 불도저가 파헤친 우연한 발견
  2. 11.5cm 쇠못, 왜 뼈에 박혀 남았나?
  3. 해부학적 분석: Haas vs. Zias & Sekeles의 대격돌
  4. 다리 부러짐(Crucifragium): 자비인가 고통의 연장인가?
  5. 왜 유골은 '딱 하나' 뿐인가?
  6. 에세이: 고통에는 성역이 없다

1. 1968년, 불도저가 파헤친 우연한 발견

성서 고고학의 대발견은 늘 의도치 않은 곳에서 터집니다. 1968년, 예루살렘 북부 '기바트 하미브타르(Giv'at HaMivtar)' 지역—지금의 라스 엘 마사레프(Ras el-Masaref). 주택 단지를 짓기 위해 땅을 파던 불도저가 고대 무덤(Ossuary, 유골함)을 건드렸습니다.

바실리오스 체페리스(Vassilios Tzaferis) 박사가 급파되었고, 거기서 평범한 유골함 하나를 발견합니다. 이름은 '하그콜의 아들 여호하난(Yehohanan ben Hagkol)'. 20대 중반(약 24-28세)의 남성. 그런데 그의 오른쪽 발뒤꿈치 뼈(종골/calcaneus)에 기이한 것이 박혀 있었습니다.

바로 거대한 '쇠못'이었습니다.

유골함의 옆면에는 헤브라이어로 '여호하난'이라는 이름이 두 번 새겨져 있었습니다. 후대 학자들은 흥미로운 추론을 제시했습니다. 한 글씨는 십자가형에 처해진 아버지를 가리키고, 다른 글씨는 그의 어린 아들(아마 3-4세)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처형 직후 아들이 죽어 그의 뼈 옆에 안장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골함 발견: 가족의 무덤이 로마의 처형 증거를 드러내다


2. 11.5cm 쇠못, 왜 뼈에 박혀 남았나?

이 발견이 왜 충격적이냐고요? 1960년대까지 일부 학자들은 "로마의 십자가형은 주로 밧줄로 묶는 방식이었으며, 못을 박는다는 건 기독교가 문헌에서 만들어낸 신화"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뼈조각 하나가 그 가설을 완벽히 분쇄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이 못이 '실수' 덕분에 남았다는 점입니다. 로마 군병이 여호하난의 발에 못을 내리쳤을 때, 못 끝이 십자가 나무의 옹이(단단한 부분)에 부딪혀 갈고리처럼 휘어버렸습니다. 못의 길이는 약 11.5cm(4.5인치) 정도.

시신을 내릴 때 못이 빠지지 않자, 짜증 난 군병들은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1) 뼈까지 부수면서 무리로 못을 빼거나, (2) 그냥 내버려 두기. 여호하난의 가족은 다행히 합리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못이 박힌 채로 발목 주변을 뜯어내어 시신을 내려 가족의 유골함에 안장했던 것입니다.

못 머리 부분에는 올리브 나무 조각까지 붙어 있었습니다. 십자가 재목이 올리브 나무였다는 증거입니다. 빼박 증거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입니다.

여호하난의 발뒤꿈치 뼈: 십자가 처형의 유일한 고고학적 증거


3. 해부학적 분석: Haas vs. Zias & Sekeles의 대격돌

여호하난의 뼈는 학계에 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같은 뼈를 두고 학자들이 완전히 다른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큰 논쟁: 여호하난의 십자가형 자세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재구성

Nico Haas의 초기 분석 (1970)

헤브라이 대학교 해부학과의 니코 하스(Nico Haas) 교수는 뼈를 분석한 결과 대담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 두 발뒤꿈치를 동일한 못이 꿰었다는 주장
  • 그 결과 발이 옆으로 꼬인 상태(twisted sideways) 에서 못이 박혔을 것
  • 양쪽 팔뚝에도 못 자국이 있다고 주장 (오른쪽 팔뚝 반지름뼈의 가는 긁힘을 근거로)
  • 다리가 "십자가형의 고문을 최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부러졌다(crurifragium)"고 해석

이 분석에 따르면 여호하난은 팔은 나무에 못으로 고정되고, 다리는 꼬인 상태에서 한 발이 다른 발 위에 겹쳐져 못으로 고정된 참담한 자세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Zias & Sekeles의 재검토 (1985)

15년 뒤, 헤브라이 대학교의 조셉 지아스(Joseph Zias)와 엘리에저 세켈레스(Eliezer Sekeles)는 뼈를 다시 검토하고 충격적인 결론을 발표했습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Haas의 여러 결론이 오류"였다는 것입니다.

학술적 재검토: 두 연구팀이 같은 뼈에서 어떻게 다른 결론을 도출했나

구체적으로:

1. 발뒤꿈치 관련 오류

  • Haas가 "두 발뒤꿈치 뼈가 모두 못을 관통했다"고 주장했던 근거는 잘못된 뼈 조각 식별에 있었음
  • 실제로는 오직 오른쪽 발뒤꿈치만 못으로 관통되었고, 못의 길이 자체가 두 발을 동시에 꿰기에는 불충분함
  • 결론: 두 다리는 십자가의 양옆으로 벌려진 상태(straddling position)였을 가능성이 높음

2. 팔뚝 못 자국 관련 오류

  • Haas가 제시한 오른쪽 팔뚝의 "가는 긁힘"은 못 상처가 아니었음
  • 같은 뼈에서 발견되는 다른 흠집들과 동일한 비외상성 결함(non-traumatic marks)
  • 결론: 팔에 못이 박혔다는 증거 없음. 대신 밧줄로 묶였을 가능성 제시

3. 다리 부러짐 관련 오류

  • Haas가 주장한 "생전에 일어난 다리 골절(crurifragium)"은 재검토 결과 사후 자연 부패로 인한 파손일 가능성이 높음
  • 골절 부위의 각도가 불규칙하고, 같은 시대 다른 유골에서 이런 패턴이 발견되지 않음

4. 다리 부러짐(Crucifragium): 자비인가 고통의 연장인가?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학술 논쟁이 생깁니다.

Zias & Sekeles는 다리가 생전에 부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여전히 많은 학자들이 의문을 제기합니다. 왜냐하면:

  1. 복음서의 기록: 요한복음 19:31-32에 명시적으로 "두 도둑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예수에게는 그의 다리가 이미 죽어 있으므로 부러뜨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옴
  2. 로마의 기록: 십자가형 피해자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Crurifragium)은 독립적인 사형 방식이자 동시에 십자가형의 마무리 절차로 문헌에 기록됨
  3. 의학적 의미: 다리가 부러지면 피해자는 더 이상 몸을 일으켜 숨을 쉬기 위해 발로 버틸 수 없으므로, 질식으로 인한 빠른 죽음을 초래함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Zias & Sekeles의 재검토 증거에도 불구하고—여호하난의 다리가 정말로 부러졌고, 그것이 그의 고문을 끝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5. 왜 유골은 '딱 하나' 뿐인가?

"수만 명이 십자가에서 죽었다면서 왜 증거는 여호하난 하나뿐입니까?" 날카로운 질문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첫째, 쇠는 비쌌기 때문입니다.

당시 쇠는 귀한 자원이었습니다. 사형 집행인들은 시신을 내린 뒤 못을 챙겨 재활용하거나, 민간에 팔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십자가형을 당한 죄수는 보통 반역자로 간주되어 시신이 들판에 버려져 짐승 밥이 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법적으로 "묻혀선 안 되는" 죄수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둘째, 여호하난은 매우 예외적인 케이스였습니다.

  • 못이 휘어서 빠지지 않았고
  • 정치적 이유 등으로 가족에 의해 회수됨
  • 유력한 가문(적어도 정식 유골함을 소유할 정도의 경제력)의 도움으로 정식 매장까지 됨
  • 약 1년 뒤 뼈를 모아 유골함에 안장됨 (2차 매장의 유대 관습)

결론: 여호하난은 '운이 좋았던' 사형수였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2000년 뒤에 로마 제국의 만행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6. 에세이: 고통에는 성역이 없다

우리는 종종 십자가를 금목걸이로 만들거나 교회 첨탑 위에 예쁘게 올려놓습니다. 종교적 상징이 되면서, 그 안에 담긴 '피 냄새'는 완전히 탈색되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혹은 영화 장면처럼 드라마틱하게 말입니다.

하지만 여호하난의 녹슨 못은 우리에게 찬물을 끼얹습니다. "이건 종교 놀이가 아니라, 살인이었다"고 말입니다.

더 흥미로운 건, 학계의 논쟁입니다. Haas와 Zias & Sekeles는 같은 뼈를 보고도 전혀 다른 재구성을 제시했습니다. Haas는 "팔도 다리도 모두 못으로 고정된 고역의 자세"를 상상했고, Zias & Sekeles는 "다리만 못으로 고정되고 팔은 밧줄로 묶인 덜 심각한 자세"를 주장했습니다.

둘 다 합리적인 증거를 제시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것은: 같은 과학 자료도 '전제'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는 점입니다.

  • Haas는 "이 뼈의 미세한 흠집도 외상의 증거일 것"이라고 해석했고
  • Zias & Sekeles는 "부패 과정에서 흔히 발생하는 손상일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어느 쪽이 맞을까요? 현재로선 명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뼈는 지난 2000년간 침묵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고학은 신앙을 돕는 시녀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의 환상을 깨부수는 망치입니다.

만약 당신이 예수의 죽음을 묵상하고 싶다면, 미켈란젤로의 그림 대신 이 투박한 뼈 사진을 보십시오. 거룩함은 매끄러운 조각상이 아니라, 처참하게 으깨진 뼛조각 사이에서 비로소 그 무게를 드러내는 법입니다.

11.5cm의 못이 인간의 뼈를 관통할 때의 그 끔찍한 파열음. 그것이 1세기 팔레스타인의 진짜 풍경이었습니다.


참고 문헌

Tzaferis, V. (1985). Crucifixion: The Archaeological Evidence.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1(1), 44-53.

Haas, N. (1970). Anthropological Observations on the Skeletal Remains from Giv'at ha-Mivtar. Israel Exploration Journal, 20(1-2), 38-59.

Zias, J., & Sekeles, E. (1985). The Crucified Man from Givat ha-Mivtar: A Reappraisal. Israel Exploration Journal, 35, 22-27.

Zugibe, F. T. (2005). The Crucifixion of Jesus: A Forensic Inquiry. M. Evans and Company.

Naveh, J. (1970). The Ossuary Inscriptions from Giv'at ha-Mivtar. Israel Exploration Journal, 20(1-2), 60-70.

Robison, J. C. (2002). Crucifixion in the Roman World: The Use of Nails at Giv'at ha-Mivtar. Studia Antiqua, 2(1), 1-19.

Cook, J. G. (2014). Crucifixion and Death by the Cross in the Ancient World. Oxford University Press.